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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가구가 한 가족이었던 마을”[인터뷰] 일산리 마지막으로 떠났던 이영문 대표
  • 김진이 기자
  • 승인 2013.11.08 15:30
  • 호수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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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이씨 집성촌, 수녀회가 있던 마을
600년 살던 집, 포크레인에 부서져
강선마을 이사와 새 공동체 꿈꾸다

“밤가시마을, 일산리 377번지. 초가집 앞이 바로 우리집 이었지. 참, 밤가초가집 기증한 이웃이 얼마 전 파주에서 죽었다는 소식 들었는데. 그게 다 고향 떠나서 그런 것 아니겠어.” 1991년 8월 30일 이영문(59세) 대표의 집이 밤가시마을에서 마지막으로 철거됐다. 55가구가 그림처럼 어우러져 살던 마을. 600년을 살던 집이 포크레인 아래 산산히 부서지던 날 이 대표는 한 고개 너머에 서서 그 모습을 담담히 촬영했다. 이미 집 바로 뒤에 있던 선산은 다 무너져 내린 뒤였다. 강선마을 2단지에서 고양시 가장 오래된 유기농산물 전문 매장 ‘일산우리밀 유기농산물’을 운영하는 이영문 대표를 만나보았다. 95년 9월에 문을 연 일산우리밀 유기농산물은 고양은 물론 우리나라 유기농산물 운동의 선두주자라 할 수 있다. 이영문 대표는 일산에서 유기농 벼농사를 짓던 농민으로 자신이 가장 잘아는 우리밀 유통을 시작했다.

TV보고 신도시 발표 알았다
“단양 이씨들이 살던 집성촌이었다. 우리 집 뒤에 예수회 수녀회가 있었고, 가난한 초가집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큰 산없이 낮은 구릉지와 평지가 이어져서 일하다가 고개를 들면 어느 집에 누가 왔는지, 누구네 집 제사인지도 다 알 수 있었다.”

그나마 이영문 대표의 집은 젖소를 길러 조금 여유가 있었지만 다들 사는 것은 고만고만했다. 그래도 가톨릭농민회와 수녀회가 있어서 다른 동네보다는 청년들이 많았다. 90년대 물난리가 났을 때도 밤가시마을은 별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러다가 날벼락을 맞았다. TV를 통해 일산신도시 발표를 보았다.
“방송 보고 대자보를 썼지. 이건 잘못된 개발이다. 강제집행 수용방식은 잘못된 거라고. 우리 동네는 절대농지로 집을 지을 수 없는데 정부가 법을 어기는 것부터가 잘못이다.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백지화를 요구했지.”
마을 주민, 이웃주민 모두가 반대했다. 집회를 하면 2000명씩 모였다. 철길을 막기도 하고, 백마초등학교에 다같이 모여 집회를 했다. 그러다가 자살하는 이웃들이 나왔다. 그러면 또 사람들이 모여 시체를 메고 장례를 치뤘다.

“맹꽁이 고양군수 외치며 반대시위”
이영문 대표는 1987년도부터 당시 원당읍에서 한겨레 지국을 운영했다. 그의 사무실 바로 옆이 신도시 개발을 주도했던 토지개발공사(현 LH) 사무실이 있었다. “토지평가에 대한 공청회를 시청에서 한다고 해서 가보니 전경들이 까맣게 몰려와있더라. 플래카드 하나도 붙이지 못하게 했다. 어떤 할머니가 갑자기 맹꽁이 고양군수, 삵쾡이 토지공사 사장은 물러가라고 했다. 내가 나서서 마이크잡고 공청회 무효라고 소리를 쳤다. 전경들이 와서 잡아가서 닭장차에 실어갔다.”
농성을 하고, 깡패들에게 매도 맞으며 그렇게 개발, 강제수용 절차가 진행됐다. 보상의 달콤한 유혹에 사람들은 하나씩 빠져나갔다. 가장 먼저 나가는 사람은 남향에 위치한 좋은 대체부지를 주겠다고 했다. 가장 나중에 나가면 북향에 형편없는 부지가 주어졌다. “주민갈등이 심각해지면서 동네사람들끼리 척을 지기도 했지. 나는 어차피 각오하고 나섰으니 제일 마지막에 나가겠다고 선언했지.”

이웃, 공동체가 무너지던 아픈 기억도
동네가 무너지는 것보다 이웃이, 공동체가, 사람들이 무너지는 게 더욱 가슴아팠다. 한번 금이 간 관계는 쉽게 회복되지 않았고, 그렇게 아름다운 마을이 무너져 내렸다. 옛 이야기를 하는 이영문 회장의 얼굴에 그늘이 내려 앉았다.
밤가시마을을 떠나 이영문 대표는 본일산 동네로 이사를 갔다가 다시 강선마을로 이사를 왔다. 주엽동 주민이다. 옛 사람들 모두 뿔뿔이 흩어졌지만 지금까지도 한달에 한번씩 모인다. 매월 셋째주 토요일. 이영문 대표는 마을, 공동체 회복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파트가 세워졌어도 사람은 사람을 그리워하며 더불어 살아가게 마련이다. 옛 사람과 새 사람이 어우러져 새도시가 된 일산. 그리움과 새로움이 어우러져 또 다른 의미의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있다.


 

김진이 기자  kjini@mygo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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