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의 의미는 일정하게 규정되어 오지 않았다. 유학을 근본으로 삼았던 조선시대에는 선비를 의미하는 선비 사(士)와 선비 유(儒)가 거의 같은 뜻으로 쓰였지만 유교 지성사의 맥락 속에서 사(士)는 유자적 존재인 지식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유자(儒者)’는 존재개념이요, 지식인은 가치개념으로 볼 수 있다. 전근대 사회에서 사(士)란 유(儒), 불(佛), 도(道)의 사상적 경계를 넘나들었던 개념이다.

연암 박지원(1737~1805)은 ‘원사(原士)’라는 글을 통해 사(士)의 존재의미와 역할, 일상적 생활자세가 어떠해야 했는가를 조목조목 밝히고 있다. 연암의 사(士) 의식은 독서와 사사로움을 극복한 공정함을 갖추는데 중심을 두고 있는데 그는 사의 역할을 대학에서 강조하는 ‘수신제가 치국평천하’에 두지 않고 독서에 두고 독서의 효과를 사사로움 없는 ‘인식의 공정성’에 둔 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매우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식의 공적 기능과 지식인의 공적 사명에 초점을 두었으되. 그 또한 현실 체제 내에 참여하는 것으로 평천하를 궁극적 목적으로 삼지 않고 독서를 통한 ‘인식의 진보’로 공정성을 확보하여 사명을 완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선비란 한 개인이 독서를 통해 얻은 지식으로 인격 도야는 물론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고 그것으로 해결해 나가는 능력을 갖춰야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단순히 유학으로 말하는 사(士)의 본적적 사명은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로 벼슬에 나아가거나 나아가기 위해 공부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18세기에 이르면 과거를 통한 인재 선발제도의 심한 부정과 부작용으로 치국평천하의 길이 막혀버렸지만 수많은 처사들은 그에 굴하지 않고 독서와 저술활동을 일생동안 게을리 하지 않으며 굳은 의지와 절조로서 자기 사명을 완수하는 길을 걷거나 바른 몸가짐을 가르치고 익혔다.

연암과 동시대를 살았던 진명 권헌(1713~1770)은 윤리 도덕적 측면에서 사의 본질을 파악하고 있는데 ‘석사(惜士)’라는 글에서 “선비를 굽힐 수 있겠는가? 탐욕한 자는 유혹할 수 있고, 나약한 자는 협박할 수 있지만, 선비는 이르러서는 굽힐 수 없으니, 굽혀진다면 선비가 아니다. 선비는 우리가 현인인 줄 알거니, 궁하여도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으며 안으로 간직하여 재주를 팔려고 생각하지도 않으니 스스로 감추더라도 겉은 암흑같으나 속으로는 날로 밝아진다”고 했다.

이를 보더라도 진정한 선비란 자기 수양을 게을리 하지 않고 늘 지식을 연마하여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봉사할 기회를 기다리는 자였으며 설령 벼슬의 기회가 오지 않더라도 평생 독서를 포기하지 않고 지조와 절제로서 옳지 않은 일에는 손을 뻗지 않는 사람다운 사람이었다. 또한 자신에게 책무 즉 벼슬이 주어지면 자신이 어려서부터 갈고 닦은 지식으로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사라는 말이 흔히 대부(大夫)라는 말과 짝하여 사대부(士大夫)로 일컬어지는 것도 그들의 이런 본질적 정신을 높여 이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비는 관리 및 관리후보로서의 양반 지배층의 지식인 내지 지성인으로 예의염치를 근본으로 언표되는 공과 의를 펼치는데 자신을 희생할 준비가 돼있었던 사람들이었다. 즉 이 땅의 선비 정신에는 멸사봉공의 정신이 으뜸가는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요즘 사람들에게 지식은 그 자체가 생존경쟁의 무기이며 경제 활동이 하나가 돼버린 것을 볼 때 독서, 즉 끊임없는 지식의 연마를 지식의 공적기능, 지식인의 공공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한 것으로 본 연암의 열린 사고에 숙연함과 부끄러움을 느낄 따름이다.

조선조 선비들이 그토록 많은 기록과 저술을 남긴 것도 다 같이 잘 살 수 있는 경세제민의 방법을 모색하기 위함이었지 요즘처럼 타인과 경쟁하기 위해 서적발간의 새로운 매카니즘의 편입되어 추격, 추월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선비! 평생을 책과 함께 하면서 수양에 의한 고결한 품성과 봉공의 의리를 실천하는 정신의 소유자, 그들의 고매한 인격과 봉공의 의리 실천이 바로 선비를 선비답게 하는 필수불가결의 요건이며 정신이다.
선비가 있는가? 선비를 자처하는 사람들마저 불의를 보고도 외면할 뿐이다.

정의를 말로만 떠들 뿐 실천으로 옮기려 하지 않는다. 양심있는 진정한 선비가 요구되는 시대이다. 어려운 시기일 때에 선비가 탄생한다.
이 시대의 진정한 선비가 나와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아 진정한 정의구현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은만·고양시 향토문화 보존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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