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독일에서 지방자치를 배운다 2

3일간의 바른 지역언론연대 독일연수는 지역언론과 지방자치, 시민단체의 활동을 둘러보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주내의 메트만군 에어크라트시의 시장과 시민단체 활동가들에게 그들의 지방자치의 현재와 고민을 들어보았다. 이번 연수는 콘라드-아테나우어 재단의 일원으로 한국을 방문, 독일의 지역자치를 강연했던 에어크라트 시의 홍보과장 크뤼거씨의 주선으로 마련됐다. 통역은 베르린자유대 언론학 박사과정에 있는 심영섭씨가 수고해주었다.

“내가 무엇을 시민에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무엇을 원하는 가를 깨달는 것이 중요하다.”
베르너 에어크라트 시장은 시정 방침을 묻자 간단히 답한다. 산업용지를 확보해 기업을 유치하여 고용을 창출하고 세수도 늘려야 하는데, 주거환경의 훼손을 우려하는 시민의 여론이 만만치 않아 여의치 않다고 하면서 일차적으로 시민의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는 것이 몸에 밴 것 같았다.

예산 적자 시군은 인근에 편입
“쓰레기와 오수 정화 문제는 중요하면서도 곤혹스러운 주제로 시는 노후 하수관을 교체해야하는데 재원이 부족하다.”시장 권한으로 일정한 절차를 통하여 세율도 인상할 수 있지만 시민들이 높은 세금 때문에 이사를 가면 어쩌냐며 시정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독일의 자치시는 재정자립도가 별 의미가 없다. 흑자, 적자만이 중요한 문제다. 순수 세입을 예상해 예산을 세워야하고 세수가 모자라면 차입을 해야 할 정도로 시재정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바츠홉브르크시는 온천과 카지노시설이 있어 주민세를 걷지 않아도 될 정도인 반면, 적자가 나는 시는 부동산을 매각하거나 정 안되면 인근 시군과 주민투표를 거쳐 편입시키기조차 한다”고. 베르너 시장은 지방자치의 수준을 실감나게 설명했다. “철강 산업이나 IT산업 유치 등에 진흥기금을 주 자치단체에서 지원하기도 하고 긴급 지원도 있지만 에어크라트시는 부자시 이미지가 있어 그것도 여의치 않다”고 엄살을 부린다.

에어크라트시 시청사는 마치 좀 큰 저택처럼 꾸며져 있는데 민원인을 찾아보기조차 힘들었다. 청사 입구 돌계단의 쪽이 떨어져 나간지 오래된 것 같았지만 수리를 하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시 청사 보수는 뒷전으로 미루고 여유가 있을 때나 가능할 것 같았다. 우리가 시청사를 방문한 날은 독일 날씨로 드문 몹시 더운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에어컨은커녕 선풍기조차 없었다. 시장은 계속 흐르는 땀을 훔치며 대화를 나눴다. 우리가 시장과 토론하고 있는 20평 남직한 허름한 이 공간은 의회 회의실이었는데 지금은 시장의 민원인 접견과 회의실을 겸해 쓰고 있었다.

의회 회의는 업무 끝난 후에
의회 회의실은 별도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시민회관 회의실을 시민들과 함께 이용하고 있었다. 일반 시민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옮겼다고 한다. 회의도 오후 5시 이후 일과를 마친 후에 연다. 의원은 무보수 명예직으로 에어크라트시에는 40명의 시의원이 있는데 이중 25%가 여성이다. 시간적 여유가 있는 40대 자영업자가 주축이다.

젊은 의원들이 진출하기도 하지만 한기 정도 의정활동 하는 것으로 족하고 재선을 별로 고려치 않는다고 한다. 의원들은 인물중심보다 정당 후보로 주로 당선되며 현재 시민단체 대표가 진출해 있다.(기미련21석, 사민당11석, 녹색당3석, 시민연합3석, 자민당2석) 무소속은 당선 확률이 지극히 적고, 지역출신 지역당원만이 후보자가 될 수 있으며 중앙당의 낙하산 공천은 상상도 못한다. 전에는 시의원 중에서 시장을 뽑고 시를 외교상 대표하였지만 지금은 98년 몇몇 주를 중심으로 시장을 직선을 선출 행정 집행권을 행사하는 초대 시장이 되었다. 초대 직선제 시장인 베르너씨는 의회의 의장을 겸임하고 있어 그 권한과 책임감이 막중하다.

“유능한 젊은이가 대도시로 빠져나가는 것은 이미 30년대에 끝났다”라고 베르너 시장은 말하면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일에 골몰하고 있었다. 환경 도시의 이미지를 살려 각 회사의 업무시설로 본사를 유치하는 방안 등을 모색하고 있다. 이미 잘 조성된 생태도시를 지키면서도 교육시설을 아름답게 가꾸어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세수 확보의 길을 모색하는 시장의 고뇌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연수단에 관리자가 문제점 설명부터
에어크라트시 시민회관을 방문하였을 때, 미하엘 슈트로 마히어 관장은 시민회관의 운영이 실패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건축가는 미래의 예언자가 되어야 한다. 시의 발전과 시민의 필요를 반영했어야 했다”고 말하며 신도시가 생기면서 주 정부에서 선물로 주어진 시민회관의 급조와 설계의 부적절함을 요목 조목 설명했다. “건축 당시 모든 단체의 요구를 복합적으로 밀집해서 짜넣으려는 설계가 잘못되었고, 아름다운 건축물 설계에 치중해 본연의 기능을 소홀이 했다”는 것이다.

“시민회관은 지역과 호흡하고 있는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평범한 단체를 생각하고 작고, 간편하고, 쉽게 접근하고, 변용 가능한 시설을 갖춘 시민 문화 공간이 요구된다”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나라 관리라면 부정적인 요소를 숨기고 그 운영 실태를 미화할 수 있는 수준인데도 시종 그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고백하면서 대안을 모색하고자 노력하는 자세에서 자치시의 한 관리로서 회관을 자립적으로 운영해야하는 고뇌의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시민 요구를 중재하는 시민단체
“우리는 에어크라트시의 경제부흥을 고민하고 있다. 도시를 균형있게 발전시키며 아름답게 꾸미기 위한 자문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관변단체에서나 나올 것 같은 말을 환경단체의 일종인 ‘에어크라트를 꽃피우자’라는 시민운동 단체의 베르켄부쉬 대표는 말한다. 시민단체는 투쟁적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우리는 자문역을 자임하는 독일의 시민단체를 관변이 아닌가 의심했지만 그들은 우리를 오히려 이해하지 못했다. “대결보다는 타협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시민단체는 혁명을 부르짖을 수 없다. 작은 변화를 통한 개혁을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단체가 시민의 요구를 끌어내기보다 분쟁을 중재하고 화해하는 역할을 자임하고 있었다.

초기 시민단체는 급진적이었는데 이제는 합의로서 시민의 이해를 관철시키는 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중요한 이념이나 정책 논의는 정당이 하고 있고 그 출신 의원이 대변하고 있다. 따라서 시민단체는 정책적 사안보다는 닭울음 소리가 소음 공해라며 결성한 ‘닭잡기 운동 단체’나 ‘나무살리기 시민연합’ 등 이슈별로 명멸한다고 한다. 에어크라트시의 경우 원거주민의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문화재를 보호하고 지역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 신도시지역 ‘혹달시민연합’, 지역 경제인이 주축으로 구성되어 경제 부흥을 고민하는 ‘에어크라트 진흥협회’등이 주로 활동을 하고 있었다. 독일 시민단체는 회비를 내지 않는 회원은 쫓겨나는 것은 당연하고 회비를 못내면 노력봉사를 해야한다. 회비나 운영면에서도 한국의 시민단체와는 거리감이 있었다.

“한국 정치는 정당 정치가 아니라 인물 중심의 정치 행태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정치 이념이나 정책 대변을 시민단체가 대신하고 있다.”
우리와 시민 단체의 역할에 대하여 토론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을 때, 크뤼거 에어크라트 홍보과장은 이렇게 시민단체와 정당의 역할이 한국과 독일이 차이점이 있다고 정리했다. 크뤼거씨는 아테나우어 재단 소속으로 한국을 방문해 한국의 시민단체와 토론하며 이곳 사정을 비교적 소상히 알고 있었다.
<본지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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