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가 또 저물어 가고 있다. 한해를 되돌아보며 정리하다 보니, 년 초에 기고했던 ‘현무(玄武)의 계사(癸巳)년’이란 졸고가 눈에 들어 왔다.

「주역」의 괘에 의해 올 한해를 전망하며 썼던 글이다. 한해를 마무리 하는 시점에서 예상했던 괘상과 올 한해의 세상사를 대조해 보았다.

필자가 보기에 계사년의 상은 강이나 내를 막 건넌 상태에서 대처해야 될 방법을 설명해 놓은 <기제괘(旣濟卦)>의 상이 예상됐었다. 그래서 괘사에 적힌 “기제(旣濟)는 형통함이 작으니 정(貞)함이 이롭다. 처음에는 길하고 끝에는 혼란하다”는 상황이 펼쳐지리라 예상했었다.

그래서 이런 상황을 설명하며, “이미 험한 강을 건넜는데도 형통함이 작은 이유는 소수의 인원인 선두만 건넌 상태이기 때문이다. 아직 건너지 못한 사람이 많은 상태여서 조처해야 될 일이 많이 남아 있는 상황이라 형통함이 작다”고 한 것이다.

‘정(貞)함이 이롭다’고 한 것은, 건널 때의 마음가짐과 건너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굳게 지녀서 모두 건너게 해야 이로우므로 정고(貞固)함이 이롭다고 한 것이다. 끝으로 ‘처음에는 길하고 끝에는 혼란하다’는 것은, 선두에서 강을 건넌 사람들은 그 건넘에 대한 칭송과 보상을 받게 되므로 건넌 초기엔 길(吉)하다.

그런데 선두로 건넌 사람들이 뒤에 건널 사람들을 깜박 잊어먹으면 이미 건넌 사람들과 건너지 못한 사람들 간에 불신이 생기고, 이미 건넌 사람들 간에도 현 상황을 타개하는 방법에 대한 이견차가 생겨 혼란이 발생하게 되므로 ‘끝에는 혼란하다’고 경고한 것이다”라고 하였었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때에 이 글을 다시 보며 세상사가 다사다난하지만 대강은 「주역」의 이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한 번 더 확인 할 수 있었다. 이처럼 「주역」의 이치가 오묘하기에 공자와 같은 성인께서도 돌아가실 때까지 손에서 떼어 놓지 못하였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식적으로 볼 때 세상사의 길흉을 미리 예시한다면 누구나 길한 데로만 나아갈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설령 길한 길을 알려주더라도 실제 길한 길로 나아가는 사람이 드물다는 것은 공자님의 삶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공자님께서 죽간을 엮은 가죽 끈이 세 번 떨어질 만큼 「주역」책을 많이 보시고, 세상 사람들에게 때에 맞는 길을 알려주었는데도, 당시 사회가 혼란함을 면치 못하였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길한 길을 걸으려 하지 않아서였으니, 좋은 결과란 앞일을 예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길한 길로 나아가려는 인간의 의지와 실천이 있어야만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회상은 결국 인간 개개인의 의지와 실천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올 한해의 결과가 좋던 나쁘던, 한 해를 산 우리가 만든 것이니 누구를 탓할 것인가!

 천지만물의 운세가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 각각 그 자리에서 그 때 그 때 마땅히 행해야 될 일이 있건만, 이런 저런 구실을 붙여 스스로를 변명하며 쉬운 길을 선호하다 보니 흉한 결과가 나온 것이 한 두 가지이던가!

욕심을 덜 버려서, 남을 의식한 가식의 굴레에 갇혀서, 한 순간 판단이 흐려져 길한 길을 놔두고 흉한 길을 선택한 결과이다. 내년에는 그러지 않아야지!

반성과 새로운 다짐으로 지는 해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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