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더불어 살며 다른 사람의 안부를 묻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몹시도 가난했던 시절에도 굶어죽은 이가 그리 많지 않았던 것은 우리 민족이 지닌 정 때문이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은 할 수 없지만 우리 민족이라면 충분히 그랬으리라 믿음이 간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자기 한 몸 안위를 살피는 일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자영업을 하는 이들은 업을 한 이래로 이렇게 어려운 적이 없었다고 아우성이고, 월급을 받는 사람들은 월급이 깎이거나 아예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러니 남의 안부를 걱정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이런 때 한 대학생의 대자보에서 비롯된 안부를 묻는 말, ‘안녕들 하십니까?’ 라는 말이 사회에 조용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모양이다. 그 내용을 자세히 보면 지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간단히 함축하고 있으며, 동시에 그 사회 문제를 도외시 하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 또한 세상일과는 담 쌓고 내 업만으로도 벅찬 나날을 보내오다 요즘 관계의 스트레스 때문에 괴로워하던 차였다.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며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힘이 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있다. 뜻하지 않은 상황에서 오해를 받기도 하고 문제 되지 않을 거라 믿고 행해 온 일들이 뒤늦게 비난을 받기도 해서 놀라고 있다. 내가 객관적이고 냉정하지 못한 때문이겠지만 억울한 면도 없지 않다. 예전 같으면 오해를 풀어보고자 애를 썼겠지만 이제는 그럴 열정이 없다. 솔직한 심정은 그냥 피하고 싶을 뿐이다. 관계의 피로감이 극에 달한 모양이다.

결과적으로 이런 피로감이 나를 그들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사회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일 것이다. 내 일만으로도 벅찬데 남의 일까지 얽혀 피곤해지기 싫은 것이다. 그렇게 자꾸만 피하다보니 세상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고 사람들이 죽는지 사는지도 모르고 살았다. 그렇게 나만 살면 되는 거라고 믿어 오다가 그 학생의 물음으로 나는 큰 울림을 받았다. 이 추위에 집에도 못 들어가고 정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 사회의 그늘에서 추위에 웅크리고 생존을 위해 온 힘을 다하는 이들을 떠올리게 된 것이다. 세상은 잘나고 돈 있는 사람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유난히 성공신화에 목마른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에 노동자들의 삶은 업신여기기 좋은 소재일지 모르나 노동자들이 없는 한 우리의 삶도 이어질 수 없다는 걸 알아야만 한다. 또한 급여를 받아 살아가는 처지임에도 자신은 노동자가 아닌 걸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게 우리 사회의 큰 문제다. 그래서 노동자들과 연대의식을 가지지 않는 것이다. 편파보도만을 보며 파업이 잘못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 그들에게 정의 따위는 가슴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다시 사회가 올바른 길로 돌아가게 될지 알 수 없는 기로에 섰다.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일지라도, 사실은 그렇지 않지만, 그들이 왜 이 추위에 거리로 나서야만 했는지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 연대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람의 관계가 싫다고 염세로 빠지지 말고 좀 더 적극적으로 그 속으로 파고들어 약자의 편에서 힘을 보탤 수 있기를 염원한다.

내가 아는 분은 얼마 전 자기 힘으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아직 우리 사회에는 공정한 룰의 적용을 받고 제대로 굴러 가고 있는 곳도 있다는 얘기다. 아직 늦어버린 것은 아닐 것이다. 함께 사는 세상, 다른 이들의 안부를 묻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 좋겠다.

고광석 대명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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