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민족이지만 참 다르구나.” 최근 신문과 방송을 도배하다시피한 북한의 장성택 숙청 사건을 접하면서 많은 대한민국 사람들이 느낀 심정일 것이다. 조선조 봉건시대보다도 더욱 잔혹한 권력투쟁이 아직도 재현되고, ‘백두혈통’을 내세우는 최고 권력자에 맹종하는 북한주민들을 보면서, 아직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있을까 의문이 든다. 민족적 유전인자가 비슷하다 하더라도 정치적, 사회적 환경에 따라 사람들이 얼마나 다른지 남과 북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21세기 첨단과학시대에도 북한사회가 ‘백두혈통’을 떠받드는 원시부족사회로 남아 있을 수 있는 이유는 권력의 철저한 언론 통제 덕분이다. 인류사회에 민주주의와 산업화를 가능하게 해준 언론이 북한사회에서는 제 기능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문과 방송은 물론이고 인터넷이나 휴대전화조차 아직은 극소수 특권층의 전유물이다.

권력의 언론 통제는 수직적 통제와 수평적 통제로 구분된다. 수직적 통제는 지배자들이 피지배자들을 조종하고 세뇌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방식인데, 우선 언론사의 숫자를 최소화해서 국가권력이나 그 추종자들이 독점적으로 운영하게 한다. 그 다음으로는 언론 보도 내용을 일일이 검열하거나 선별해, 권력이 원치 않는 내용이 피지배자들에게 전달되지 못하도록 만든다.

수평적 통제는 국민들 상호간 정보교환이나 의사소통을 제한하는 것인데, 소수의 언론매체만 관리하면 되는 수직적 통제보다 훨씬 어렵다. 그래서 수평적 통제는 제도적인 차원보다는 문화적인 차원에서 시행된다. 그 일례로, 봉건주의 사회나 독재국가에서는 유별나게 ‘말조심’을 강조한다.

군사독재 시절엔 남한사회도 침묵과 의심의 사회였다. 쿠테타 세력들은 언론통폐합과 언론인 해고 등을 통해 수직적 언론통제를 공고하게 했다. 그 결과 당시 언론은 권력자와 권력추종자들의 전유물이었다. 국민들간의 수평적 의사소통도 제한했다. 언론으로부터 외면 받는 국민들의 유일한 의사표현 수단인 집회나 시위를 원천적으로 금지했고, 사회문화적으로도 공포와 의심의 시대를 조성했다. 60년대 남한정부는 반공국가 체제를 만들고, “우리 마을 간첩 있나 다시 한 번 살펴보자”고, “간첩 잡는 아빠 되고 신고하는 엄마 되자”고 독려했다.

그러나 남한의 독재권력은 수직적 언론통제는 지켜냈지만, 국민들간의 수평적 의사소통까지 차단할 수 없었다. 독재타도와 민주주의를 외치며 거리로 나온 시민들의 요구에 굴복하고 권력을 포기해야 했다. 민주화 이후 남한 사회는 독재권력이 공고하게 구축한 언론의 수직적 통제구조를 해체하고 재편하느라 한동안 진통을 겪어야 했다. 공영방송 구조개편이나 소위 ‘조중동’의 신문시장 독과점 해소를 두고 좌우로 갈려 치열하게 싸웠다.

그러나 인터넷과 스마트폰 그리고 SNS가 보편화되면서 수평적 의사소통은 더욱 활발해졌고, 언론의 수직적 통제는 그 의미를 거의 상실했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인해 특정 소수의 언론사가 여론과 정보를 독과점할 수 없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권력의 눈치를 보며 말조심해야하는 시대에서 할 말은 하고 사는 사람들의 시대가 되었다. 부와 권력은 여전히 소수에게 집중되어 있지만, 거침없이 말할 수 있는 자유만큼은 보편적으로 보장되는 사회가 되었다.

북한 주민들이 상호간 자유로이 수평적으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시대가 된다면, “백두혈통”의 공포정치는 한민족 역사의 오점汚點으로 기억될 것이다.

장호순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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