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노무현 대통령의 부산 변호사 시절을 다룬 영화 <변호인>의 인기가 뜨겁다. 관람객의 평가 중 가장 회자되는 영화의 장면은 운동권 학생을 고문해 간첩으로 누명을 씌운 경찰관과 그들의 무죄를 주장하는 주인공 변호사간의 법정공방이다.

영화 <변호인>은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영화 속 고문경찰관에게 국가는 국민들이 속한 집단이다. 그 집단의 안녕과 평화를 위협하는 개인들을 반국가적 범죄자로 간주해 처벌하는 자신과 같은 사람들은 애국자이다. 국가구성원 다수를 위해서 소수를 희생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본다. 반면 <변호인>의 주인공에게 국가는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국민 개개인이다. 헌법상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으로 국민이 주인이며, 국가의 안보를 구실로 국민의 인권을 유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군사독재가 아닌 민주사회에서도 국가는 억압의 주체가 될 수 있다. 국가 구성원의 생명과 권리와 이익을 지켜주기도 하지만 그것을 빼앗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설사 독재권력이 아니더라도 국가 구성원 다수가 소수의 권리와 이익을 침해할 수 있다. 국가안보나 국민복지 등을 내세와 국민다수가 국민소수를 억압하고 착취할 수 있다.  

영화 <변호인>의 관객몰이는 인권변호사 노무현에 대한 존경과 향수도 있지만 국가의 역할에 대한 그의 해석에 공감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관객들로 하여금 내가 국가의 주인이고 국가자체란 것을 깨닫게 해주는 영화이다. 동시에 현재 대한민국 국민들 중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을 "억압하는 다수"가 아니라 "억압받는 소수"라고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 <변호인>은 30년 전 독재정권 시절의 이야기이다. 그 이후 한국사회에서는 국가권력에 의한 자의적 인권유린이 크게 줄었다. "종북 빨갱이"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무고한 대학생을 고문해 간첩으로 만드는 그런 나라는 이제 아니다. 그렇다면 "국민이 국가"라는 신념을 지닌 사람을 대통령으로 당선시켰지만, 여전히 많은 대한민국 사람들은 "국민이 국가"라는 명제가 현실과는 다르다고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사회가 영화 <변호인> 시절이나 지금이나 달라지 않은 것이 하나있다. 그것은 여전히 국가중심 사회라는 점이다. 개인의 삶에 국가가 미치는 역할이 막대하고, 개인의 사고방식도 철저히 국가중심적이다. 인간, 사람, 주민, 시민이라는 단어보다는 "국민"이라는 단어가 보편적으로 사용된다.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바뀌었지만, 왜 바꾸었는지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다.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서 보수던 진보던 국가를 강조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다만 국가를 무엇으로 보느냐는 관점이 다를 뿐이다. 지역을 무시하기도 보수나 진보 모두 마찬가지이다. 정치인들에게 지역은 국가권력을 잡기위한 수단내지는 발판으로 여길 뿐이다. 그래서 2014년이 지방선거의 해이긴 하지만, 지역적 선거가 아닌 국가적 선거로 변질될 확률이 높다.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은 국가를 견제하는 힘이 국민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대한민국이 독재권력은 퇴출시켰지만, 아직 민주화를 달성하지 못한 이유는 민주국가의 또 다른 구성요소인 지역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권력의 독점과 전횡을 막는 장치인 지역분권과 지방자치가 크게 미흡한 것이다. 그래서 다른 민주국가에서는 보편화된 지역사회나 지역공동체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 사람들에게는 국가에 대한 자부심과 국민으로서의 권리의식은 매우 강하지만,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해선 그런 감정이 거의 없다. 국민으로서의 주권의식 뿐만 아니라 지역주민으로서의 주권의식이 동반되지 못한다면 그만큼 한국사회의 민주주의는 정착이 지체되고, 국가로 부터 소외당하고 억압당하는 사람들이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장호순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