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동구 중산동 ‘우담골’ 김종석 대표

▲ 김종석 시인에게 있어 목회자의 삶과 시인의 삶은 다른 것이 아니다. 김 시인은 신앙시 같은 종교적 시를 쓰기도 했다.

김종석(청산·58세) 시인은 무도인, 목회자, 시인 등 3가지 꿈을 함께 키웠다. 그는 고봉산 자락 아래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유년시절에 칡뿌리를 캐먹고 벚나무의 버찌와 뽕나무의 오디를 간식으로 먹기도 했다. 집 앞 맑은 개울에서 미꾸라지를 잡아서 친구들과 털레기도 종종 끓여먹곤 했다.

김 시인은 고등학생이 되자 무도인이 되겠다는 꿈으로, 학교가 끝나면 오로지 태권도장에서 모든 시간을 보냈다. 때로는 집 뒷산의 나무에 새끼를 엮어 두고서 이단옆차기뿐만 아니라 아령, 평행봉으로 운동했다.

몸을 단련시키며 그렇게 운동을 하던 김 시인은 고2때 친구 따라 작은 교회에 나가게 되면서 신앙을 접했다.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한 신세계를 알게 됐다”고 하는 그는 따뜻한 분위기의 안정되고 사랑이 넘치는 교회의 모습에 매료되면서 목회자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고교졸업 후 의정부 백석면 단촌부락 오지의 개척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는데, 군입대 전까지 이곳에서 전도사로 마음을 쏟았다. 이곳에서 어느날 성경공부를 공부하는데, 누군가 방문을 노크해서 곧바로 뒤돌아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김 시인은 이러한 경험을 두세 번 반복했다. 어느날은 너무 이상해서 방문을 열고 나갔는데 뒤뜰에 서있는 커다란 나무가 있었고 그 나무에 달린 수많은 잎들이 흔들리는 것이었다. 당시 김 시인의 눈에는 그 수많은 잎들이 손이 되어 자신을 열렬하게 환영하는 모습으로 비춰졌던 것이다.

김 시인이 경험한 그날의 신기하고 환희에 가득찬 영적 체험은 38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마치 오늘의 일처럼 떠오르곤 했다. 김 시인은 군 제대 후 곧바로 서울·의정부·평택·인천 등에서 27년 동안 목회자의 길을 걷다가 2007년 무렵 명예퇴임을 했다.

이후 2007년 7월 27일, 무더운 여름날, 김 시인에게 갑자기 마음이 열리면서 자신의 마음이 말을 하는 경험을 했다. 김 시인은 “당시 마치 거미줄이 나오듯이 끝없이 ‘자동서기’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심리학 용어인 ‘자동서기’란 여러 영적 현상 중 가장 독특한 현상으로 필기도구를 쥔 손이 사람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저절로 글을 쓰는 현상이다.

김 시인은 그렇게 자동서기 현상을 체험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신앙시·수상록·예언·수필등 여러 장르의 글 500여 편을 쓴 것이다. 김 시인은 2012년 2월 18일 아람문학의 신인문학상을 수상함으로 시인으로 등단하여 현재에 이르렀고, 그해 수상록 ‘로의 메시지’를 펴낸 바 있다.

김 시인은 시를 따로 공부하지 않았다. 그저 글이 저절로 새어나와서 썼다는 것이다. 그렇게 저절로 나온 글이 시라고 인정을 받아 등단을 했던 것이다. 김 시인은 시인치고는 좀 독특한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김 시인은 지금도 시낭송과 시노래로 이웃을 섬기고 마음이 동하면 앉은 자리에서 서너편의 시를 짓는다. 머리로 생각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가슴과 영혼에서 흘러나오는 흐름을 따라간다. 그는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하여 본성에 귀를 기울여서 마음의 소리를 담아내려 한다.

김 시인은 아내인 권희숙씨, 남동생인 김종열씨와 함께 한우 가마솥 국밥 전문점인 ‘우담골(본지 1155호 소개)’을 운영하고 있다. 김종석 시인은 “마음이 힘든 이들과 영적 체험한 것을 함께 나누며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가고 싶다”는 소망을 비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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