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 22명 금정굴위령사업 부결

한편에서는 ‘만세’를 외치고 다른 편에서는 한맺힌 절규가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한국전쟁 당시 경찰과 우익단체에 의해 부역혐의를 받고 탄현동 금정굴에서 희생된 이들에 대한 위령사업 촉구결의안이 표결 끝에 시의회에서 부결됐다.

14일 고양시 의회 길종성 의원 외 21명의 발의로 제출된 ‘금정굴 희생자 위령사업 촉구결의안’이 찬성 10, 반대 18로 통과가 무산됐다.

촉구결의안은 사회산업위원회에서 의원 만장일치 찬성로 통과되고 22명의 의원들이 찬성 서명을 해 무난히 통과될 것이라고 예상됐었다. 김유임 의원은 “탄현동 현장에서 어린아이, 여자 뼈가 다수 발견되고 양민 희생에 대한 증언들이 있었다”며 “고양시에서는 행려병자가 죽어도 따로 장제비용을 예산으로 지출하는데 50년이나 지난 유골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반대의견 발언에 나선 강태희 의원은 “당시 부역자들에 대한 실상을 충분히 알고 촉구안을 올린 것이냐”며 “위령사업을 하려면 모든 민간인 희생자를 대상으로 하라”고 말했다. 찬성안에 서명을 했던 박종기 의원은 “위령사업을 당장 추진하자는 뜻보다는 본회의장에서 한번 논의해보자는 의도였다”며 예산안 지원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냈다.

이날 본회의가 시작되기도 전에 고양시의회 건물 앞에는 대한민국 상이군경회, 전몰군경 유족회, 전몰군경미망인회, 6.25참전 태극단동지회 등 고양시 6개 보훈단체 회원 200여명이 ‘대한민국 주적은 북한괴뢰’‘촉구 결의안 결사반대’등의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침묵시위를 벌였다. 전경들이 건물 안팎을 휘감고 있는 삼엄한 분위기에서 본회의장에는 시민단체와 유족회 회원들, 기자들이 방청석을 가득 메웠다. 유족회 회원들은 이번에는 ‘혹시나’ 하는 간절한 희망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각 보훈단체 회원들은 비상 회의를 소집해 촉구 결의반 통과 저지를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안건을 발의한 몇몇 의원들은 며칠 전부터 이들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로 ‘시달림’을 받아 아예 전화를 꺼놓기도 했다.

한 시민단체 회원은 “단순히 몇 푼 안되는 사업비를 책정해 위령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오래된 감정의 골을 풀어보자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결국 50년 넘게 지속된 골은 풀리지 않는 과제로 남겨졌다. 그러나 같은 지역에서 안고 살아온 뿌리깊은 반목은 22표를 10표로 줄일 정도로 강한 연대와 집단행동으로 표출됐다.

무기명 투표 끝에 찬성 10 반대 18로 부결되자 보훈단체 회원들은 시의회 밖으로 나가 만세를 불렀다. 금정굴 유족회원들은 본회의장을 빠져 나오는 의원들에게 울분을 토했다. 유족회의 서병규 회장은 의원실 문을 밀치며 진입을 시도했지만 경찰에 의해 무산되자 희생자들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절규하기도 했다.

이날 부결된 촉구안은 “금정굴 사건의 진상규명과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정부에 특별법 제정을 건의해야 하지만 인도주의적 차원의 희생자 위령사업은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금정굴 사건은 지난 1993년 처음 제기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95년에는 유족들의 자체 모금으로 153구의 유골이 발견됐지만 40여일 동안 방치되다 현재 서울대학 박물관에 보관중이다. 99년 경기도 의회에서는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위령사업 시행을 결의하고 예산지원을 약속했지만 고양시의 반대로 무산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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