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는 아직도 냉전의 한겨울인가. 한반도에서 이념의 대결을 넘어 민족의 화해와 협력의 물결이 일렁거리는데 통일거점도시를 지향하는 고양시에서 역사는 거꾸로 거스르고 있었다. 신임 시장의 의지와 의식있는 의원들이 나서 모처럼 22명의 의원들의 서명으로 발의한 금정굴 양민 희생자에 대한 위령사업 촉구안이 한 집단의 압력과 소신없는 의원의 반대로 좌절되는 뼈아픈 일이 있었다.

본질과는 동떨어진 국가보안법이 살아있고, 반공이 국시이기에 공공 기관인 고양시가 나서서 위령사업을 해서는 안된다는 논리가 지배했다. 군부독재 시절에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던 반공이 아직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다시 돌아보자. 이미 경기도의회에서 특별위의 조사활동을 거쳐 결의했듯이 도는 위 위령사업을 지원할 수 있는 예산까지 마련했었다. 당시 위 사건을 지휘한 고양경찰서장은 아무런 절차 없이 양민을 처형한 책임을 물어 직위 해제한 사실로 보더라도 이미 국가가 적법하지 못했던 행위임을 인정한 사건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반대 집단은 위령비를 세우고 제단을 마련해 죽은 이의 원혼을 달래고자하는 소박한 사업을 극구 반대를 하는가. 우리는 자신들이 가해자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책임과 처벌이 두려워 반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반세기 이상을 가위눌리게 했던 이념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각자의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과 처신, 그 이후 일방적으로 어느 편을 강요한 국가 사회적 압력이 아주 간단한 인도적 문제까지도 회피하고 그 속에 싸잡아 넣으려고 했다. 강요되어 고식화된 주관이 간명한 인권의 문제조차도 볼 수 없게 해왔다.

전쟁 전후 대부분 지역에서 좌우의 처참한 대결과 쌍방이 수많은 희생자가 있음을 모르지 않는다. 피해 당사자들이 시퍼렇게 살아있고 그 감정의 골이 깊게 패어 아직도 그 앙금이 남아 있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러나 이는 지역의 누구누구의 잘못이 아니다. 지역 공동체를 일구며 희노애락을 같이 하던 우리의 이웃이 아니었던가. 단지 질곡된 역사의 희생자들일뿐이다. 이미 우리 민족은 역사의 아픔을 넘어 화해하고 있다. 대부분 한반도에서 일어난 전후 양민 희생자의 위령 사업은 공공기관이 나서서 실천하고 있는 단계이고, 국회에서도 특별법을 제정하려는 시점에 와있다.

금정굴 위령사업은 과거의 문제만이 아니다. 오늘 우리의 과제이고 미래의 희망이다. 이를 화해와 인도적으로 해결하는 전례를 남길 때, 미래에 같은 상황이 일어나도 쉽게 생명이 경시되는 일이 없는 인간의 존엄성을 일깨우는 바로 우리 자신의 문제다. 또한 통일도 이것을 해결하면서부터 가져올 수 아주 단순하면서도 근본적인 문제다. 인공치하를 두 번이나 겪었던 그래서 그 상처가 더 깊은 고양시가 이 문제를 선구적으로 해결할 때 통일의 거점도시가 될 자격이 있다.

고양시 의회는 반성해야 한다. 자필 서명까지 한 사안을 어떤 분위기에 질려 손바닥 뒤집듯이 한다면 그 의식과 소신이 말이 아니다. 고양시는 의회에서 결말이 난 사안이라고 손을 놓아서도 안될 것이다. 시장은 그 해결 의지를 보인 만큼 이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다각도의 방법을 구상해야 한다. 반대 집단도 같은 희생자의 입장에서 넓은 아량을 가지고 위 사업을 인도적 차원에서 바라볼 수 있는 따뜻한 가슴을 가져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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