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터미널 화재진압의 영웅들

48세 박성철·27세 최슬기씨 
경력 18년 베테랑과 신입
목숨 걸고 검은 연기 속으로

“전 차량 출동 명령에 펌프차를 타고 고양터미널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화재현장 500미터 앞에서부터 거대한 검은 연기가 하늘 위로 솟아오르는 걸 보고 대구지하철 화재 사고가 떠올랐어요. 연기를 보고 솔직히 겁이 났습니다. 긴장해서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어요.”

일산소방서 박성철 소방관은 경력 18년차의 베테랑이다. 산전수전 다 겪어본 그였기에 이번 대형화재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쯤은 쉽게 알 수 있었다. 거기다 대형건물의 지하에서 난 불이었다.

“지하에서 난 불이 소방관들에게는 가장 무섭습니다. 일단 앞이 보이지 않고 내부 구조를 모르기 때문에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많아요. 들어가서 출구가 막히거나 구조물이 붕괴해 못나오는 경우도 있고요.”

대형건물 지하에서 난 불은 18년차 베테랑에게도 두려움의 대상이다. 그만큼 위험한 화재진압이었다.

이번 고양종합터미널 화재로 8명이 사망하고 60여명이 부상당했다. 사상자는 많았지만 화재는 비교적 짧은 시간인 20여분 만에 진화됐다.

화재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일산소방소 박성철(48세), 최슬기(여 27세) 소방관은 한 팀으로 움직이는 화재진압 대원이다. 터미널 화재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소방호수 5개를 연결해 들고서 시커먼 유독가스가 나오는 터미널 지하로 제일 먼저 들어간 용감한 소방관들이다.

박성철 소방관은 “호스를 들고 들어가 보니 이미 내장재가 한번 연소가 된 상태였어요. 순식간에 타버렸던 거예요. 검은 연기에 앞이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불길을 찾아 더 깊이 들어갔죠”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에 비해 경력 6개월의 최슬기 소방관은 긴장해서인지 현장에 도착해서 불이 꺼지기까지 20분 동안의 기억이 거의 없다. “많이 긴장 한데다 불을 빨리 꺼야겠단 생각 밖에 없었어요. 정신이 없었어요. 거의 패닉 상태였죠. 선배들 뒤에서 호스 들고 열심히 뛰었어요. 앞이 안보여서 선배를 잃어버리면 ‘나도 죽는다’라는 생각에 지하에 내려가서는 검은 연기 속에서도 선배들이 어디에 있는지 집중했죠.”

현장은 그야말로 아비귀환이었다. 연기에 검게 그을린 희생자들이 구조대에 안겨 나오고 밖에서는 아는 사람이 아직 안 나왔다며 절규하는 시민들까지... 두 대원은 화재진압이 끝나자 부상자 구조에 힘썼다.

 

긴박한 현장에서 부상자를 구해내는 모습이 화재 당일 고양신문(1176호, 5월 28일자, 1면 사진) 카메라에도 잡혔다. 부상자에게 산소 호흡기를 씌워주고 있는 박성철 소방관과 그 뒤를 따르고 있는 최슬기 소방관의 구조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것.

작년 12월에 소방관이 됐다는 최슬기 소방관. 짧은 경력이지만 소방관으로 현장에서 일해 보니 어떠냐는 기자의 질문에 6개월간의 생활을 돌아보듯 잠시 생각에 잠겼다.

“4개월 된 아기가 심폐소생술 도중 눈앞에서 사망하기도 했어요. 구급대원들이 있었기에 직접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지만 아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에 며칠간 계속 힘들었어요. 그런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가 않아요.”

이어 그녀는 “면접에서 했던 말이 기억나요. 소방관은 사명감을 가지고 봉사하는 직업이라고. 해보니 진짜 맞아요. ‘사명감과 자부심이 없다면 소방관을 계속 해 나갈 수 없겠구나’라고 생각해요. 그만큼 힐들기도 하지만 보람된 일이기도 합니다.”

키 173cm의 건장한 체격의 최슬기씨는 선배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14명의 같은 팀 화재진압 대원 중 슬기씨가 유일한 여성이다. 일도 잘하고 성격도 좋아 선배들 칭찬이 자자하다.

“전 아무래도 사무직보다 현장 체질인가 봐요. 6개월 현장체험 후 사무직으로 옮겨가는 동기들도 있지만 전 계속 현장에 남고 싶어요.”

최슬기씨의 이런 모습에 선배들도 다들 흐뭇하다. 24시간 2교대의 힘든 근무 조건에서 100만 고양시민의 안전을 위해 묵묵히 일하는 소방관들이 있어 오늘도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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