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종이 인형이 사람을 웃게 만드네

“잘 하고 와. 파이팅!” 
전진숙 작가는 공모전에 출품할 닥종이 인형 귀에 속삭여 준다. 그녀의 말을 들은 닥종이 인형은 알았다는 듯이 빙그레 웃는다. 닥종이 인형을 만들어 온지 20여 년이 가까워 오는 전진숙 작가. 평생 동안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인사동에서 닥종이 인형을 배우기 시작했다. 2000년, 간판도 없이 설립한 연구소는 그녀가 닥종이 인형을 만드는 일에 몰입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연구소가 생기면서 한두 명씩 수강문의를 하거나 작품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 전진숙 작가는 작품을 만들기 전 그 대상을 세밀하게 연구하고 작품에 반영한다. 또한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도 더욱 많은 신경을 쓴다. 대상의 연구와 세밀함은 그 작품을 가장 잘 표현해 주기 때문이다.

 이제 연구소는 이 작업을 널리 소개하고 가르치며 판매도 할 수 있는 곳이 되었다. 교육학을 전공한 전 작가는 인사동에서 닥종이를 처음 배우기 시작한 이래 국립민속박물관에서도 공부했고, 전문적인 공부를 하고 싶어 전주 예원예술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에서 한지미술을 전공해 교수가 되기도 했다. 또한 홍익대학교에서 인체에 대해서도 배웠다. 갓난 아기로부터 풍진 삶을 산 노년의 얼굴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인체에 대해 무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간판을 건다는 것도 부끄러웠던 시절이 있었던 그녀는 꾸준히 배우고 연구하고 연습했던 8년이 지난 뒤 ‘닥종이 인형연구소’라는 어엿한 간판을 걸게 되었다. 축적된 시간이 그녀에게 내공을 쌓게 했으리라.
“2003년 모 방송국 로고송이 나올 때 제가 만든 인형이 배경화면으로 등장했던 일과 2007년 우리나라에서 열린 IAEA 50주년 국제 컨퍼런스 때 엘바라데이 IAEA 사무총장을 닮은 인형을 만들어 선물했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전진숙 작가. 그 일이 계기가 되어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51차 IAEA 총회 때 원자력 교육 변천사를 닥종이로 만들어 전시할 만큼 닥종이 인형에 대한 인기가 좋았다. 우리나라 전통 한지로 만든 투박한 인형이 국제무대에서 멋진 외교활동을 한 셈이다. “다음 주에 세종문화회관에서 송강 정철의 일대기를 스토리화한 작품들을 전시하고, 6월 26일부터 터키 이스탄불, 7월 고양어울림누리, 9월 LA, 10월 경인미술관에서 전시계획이 잡혀있다”고 한다. 간판도 달기 부담스러웠던 미약한 시작이었지만 이젠 전통을 지키고 홍보하는 국제 대사가 되었다.


▲ 30㎝ 크기의 인형 하나를 만드는데 2~3개월이 걸린다. 철사로 뼈대를 만들고 그 위에 계속 풀 바른 닥종이를 덧붙이는 것이다. 제대로 마르지 않았을 때 덧바르게 되면 인형 안에서부터 곰팡이가 생겨 오래 보관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그렇게 시간이 걸린다. 크고 작은 것에 상관없이 디테일을 살아있는 것이 전 작가만의 습관이자 작품을 접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이다.

닥종이 인형을 만드는 회원들은 2년에 한 번씩 스토리가 있는 전시회를 개최한다. 올해는 ‘한국을 빛낸 위인’을 주제로 개최한다. “고양시 인물을 다뤄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고민하다가 정철 선생의 호방한 성격과 장진주사와 권주가 등의 탁월한 한글 가사와 한시 그리고 정치인으로서 활동했던 역동적인 모습을 알게 되면서 그분의 일생을 닥종이 인형으로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세종문화회관에서 전시할 송강 정철의 일대기는 거의 완성단계다. 그녀는 인형 제작 의뢰가 들어오면 직접 주인공에 관한 정보를 수집한다. 박물관이나 무덤을 찾아가기도 하며 주인공의 성격, 외모, 업적 등에 관해 꼼꼼히 알아보는 일은 그녀가 만들 주인공과의 교감을 위해서다. 송강 정철을 만들면서도 그의 일대기, 한글가사와 한시 등을 읽어보며 송강이 어떤 인물인지 느껴보는 과정을 거쳤다. 그런 시간을 거쳐 만든 인형을 보고 “표정이 살아 있어!”라는 말을 들을 때가 가장 뿌듯하다고 한다. 30㎝ 크기의 인형 하나를 만드는데 2~3개월이 걸린다. 철사로 뼈대를 만들고 그 위에 계속 풀 바른 닥종이를 덧붙이는 것이다. 제대로 마르지 않았을 때 덧바르게 되면 인형 안에서부터 곰팡이가 생겨 오래 보관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그렇게 시간이 걸린다.
그녀는 보이지 않는 부분에 더욱 신경을 쓴다. 그녀는 인터넷을 통해 면세점에서 팔고 있는 전통인형의 내부가 신문지 뭉치로 만들어진 것을 보게 되었다. “혐오스러웠고 외국인들이 주로 사가는 것을 생각하니 부끄럽기도 했다”며, “인형을 쉽게 만들기 위해 요령을 피울 방법은 얼마든지 있지만 선물로 주고받는 이 인형에는 진심이 담겨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다. 7월3일 어울림 별모래극장에서 제12회 송강문화제 개최된다. 이때 전 작가가 만든 송강 정철 선생의 일대기를 다룬 닥종이 인형이 별모래 극장에 전시될 예정이다. 안재성 향토문화보존회장은 “누구의 후원을 받는 것도 아니면서 지역 문화행사에 작품을 흔쾌히 전시해주시니 감사하다”며 “많은 분들이 닥종이 인형으로 만든 송강 정철 선생의 일대기를 감상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재 닥종이인형연구소에서는 20여 명의 회원들이 있다. 교육과정을 1년간 초급·중급·마스터 단계로 나누었고 이 단계가 끝나면 작품반을 통해 공모전을 준비할 수 있다. “인형이 사람을 웃게 만든다”는 그녀의 표현대로 천 번을 붙여야 하는 닥종이 인형을 만들며 인내를 배우고, 인형에 담긴 삶을 통해 겸손을 얻을 수 있다. 또한 귀하게 만든 작품을 귀하게 사가는 손길 덕분에 경제적인 기쁨도 얻을 수 있다. 인형을 만들며 늘 대화를 나누는 그녀는 전시회를 앞둔 송강 정철 선생의 귀에 “전시회 잘 하고 오세요”라고 속삭였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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