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1991년 당시 발굴작업에 참여한 이원경 학예사

고양시농업기술센터 내에 위치한 가와지볍씨 박물관을 지키고 있는 이원경<사진> 학예사는 1991년 5월 당시 충북대 고고미술사학과 2학년 학생이었다. 그는 이융조 충북대 교수가 이끄는 조사팀에서 2지역(당시 대화4리) 발굴작업에 참여했다. 5월 7일부터 시작된 발굴작업 초창기 열흘 동안 투입된 그를 통해 발굴 당시를 더듬어 본다.

발굴작업에 참여한 계기는
교수님이 학부생들이 많이 참여했으면 좋겠다며 독려했다. 그래서 충북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주축 학생들이 약 60명 정도 참여했다. 당시 충북대 신생학과였던 고고미술사학과 2학년이었던 나는 어느 지점을 전면 발굴할지, 위치를 잡기 위해 구덩이를 파보는 초기 작업에 투입됐다. 발굴 시작한지 2주쯤 후에 토탄층에서 볍씨가 발견됐는데, 볍씨 발견 시점에는 내가 조사팀에서 이미 빠진 상태였다.

발굴작업 당시 숙식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나  
다른 팀은 주위 여관에서 잠을 잤다고 하는데 충북대 팀은 현장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1991년 5월 7일부터 발굴을 시작해서 선발단이 먼저 작업을 했다. 선발단이 숙식할 장소를 물색해보니 현장에는 당시 김수원님의 가옥이 딱 한 채 있었다. 김수원님의 가옥에서 숙식할 수 있도록 양해를 얻었다. 여학생들은 그 집의 방 하나를 얻어 숙식할 수 있었지만 남학생들은 바깥에서 천막을 치고 생활했다. 60명이 모두 동시에 발굴작업에 투입된 것이 아니라 시기별로 나눠 투입됐기 때문에 한 곳에서 숙식이 그나마 가능했다.

발굴작업에 하루에 몇시간 정도 투여됐나 
식사하는 시간, 잠자는 시간 외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거의 발굴작업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루의 발굴작업이 끝나는 저녁이면 발굴작업에 대한 성과에 대해 토의했다. 내가 있을 당시에는 5월 초중순이니까 많이 덥지 않았지만 내가 나간 이후 투입된 조사팀원들은 매우 더워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나
낮인데도 날벌레가 많아서 애를 많이 먹었다. 땅을 파면서 친구들과 얘기를 하면 입으로 날벌레가 들어갈 정도였다. 고고학이라면 붓을 가지고 일을 하는, 정적인 작업인 줄 알았는데 처음 발굴작업을 하는데 삽을 주는 것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체력이 많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다른 팀은 60일 정도 발굴하고 철수했지만 2지역을 맡았던 충북대 조사팀은 120일 정도 발굴작업을 했다. 예산이 바닥나서 이융조 교수님의 개인적인 사비를 들여 발굴작업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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