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년 전 봄 영심동으로 이사 온 다음날 아침 식사를 하려는데, “야옹! 야옹!”하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우리 집은 고양이를 기르지 않기 때문에 별 관심 없이 지나치려는데, 마치 사람을 부르는 것처럼 계속 들리니 집사람이 나가 보게 되었다. “얼른 나와 보세요. 예쁜 고양이가 있네!” 하면서 불러내기에 나가 보았더니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 집 문 쪽을 향해 앉아 있었다. 전신이 검은데 가슴 부분에만 작은 흰 반점이 있었고 털에는 윤기가 번지르르하게 흐르는 고양이었다. 큰 눈을 뜨고 바라보고 앉아 있는 폼이 도둑고양이가 아니라 주인고양이처럼 기품이 있었다. 문을 열고 나가도 몇 걸음 뒤로 물러나 또 앉아 있고 도망을 가지 않았다. 이상한 놈이었다. 집사람은 “아무래도 먹을 것을 달라고 저러는가 싶네요.” 하면서 먹을 걸 가져다주었다. 그렇게 해서 그 고양이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집사람은 고양이 이름이 있었으면 좋겠다며 나에게 좋은 이름 좀 지어달라고 청탁 아닌 강요를 했다. 도둑고양이 이름이나 짓자고 공부한 것이 아닌데 편안한 밥 얻어먹으려니 이름을 지어주게 되었다. 집사람이 좋아하는 영화 속 주인공의 이름을 따서 ‘막시무스’라고 지어주었더니 집사람이 아주 좋아하였다.

 한 주도 가기 전에 막시무스가 적어도 하루에 아침과 저녁 무렵 두 번은 정기적으로 순찰을 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주 순찰로는 마을을 오른쪽으로 돌아 왼쪽 둔덕에 있는 우리 텃밭을 돌아 내려가는 코스였다. 가끔 누런 털에 흰 반점이 한두 군데 박힌 고양이와 함께 순찰을 돌 때도 있었다. 아마 가족인 것 같았다. 그해 겨울까지 이런 인연이 계속되었다.

 그런데 다음 해 봄이 되면서 변고가 생겼다. 집사람 말이 어느 날부터 갑자기 막시무스가 오지 않는다는 거였다.

 막시무스가 사라진 뒤 큰 변화가 생겼다. 전에는 도둑고양이들이 출몰하지 않았었는데 여러 고양이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전형적인 호피무늬 고양이, 반쯤은 검고 반쯤은 누런 고양이 등 여러 종류의 고양이가 출몰하더니 야외 주차장과 집 주위에 무단 배변을 해 놓는 것이었다. 꼭 차 문 곁에 배변을 해 놓아 아침부터 기분을 상하게 하곤 하였다. 이런 일이 반복되니 도둑고양이들에게 안 좋은 감정이 생기게 되었다. 그러나 마을길을 지나며 텃밭을 일구며 늘 마주치니 싫었지만 일 년 넘게 그런 무질서를 보며 살아야 했다.
 그런데 올 봄을 지나면서 다시 큰 변화가 생겼다. 우선 여러 종류의 도둑고양이들이 나타나지 않고 차 옆에서도 고양이 배설물이 발견되지 않았다. 이런 일련의 상황에 대해 이상하게 여기던 차에 초여름 어느 날 부추 밭에서 부추를 자르고 있는데, 못 생긴 고양이 한 마리가 내 바로 앞을 지나 간이 쓰레기장 쪽으로 가는 것이었다. 다른 도둑고양이들은 사람을 보면 경계를 하며 달아나는데 이놈은 나를 힐끗 쳐다보며 느긋하게 지나가는 폼이 전에 어디서 본 듯한 폼이었다. 덩치도 작은데다가 호피 무늬도 선명하지 못했고 그나마 윤기 없는 털이 삐죽 삐죽 하여 볼품이 없었다. 예쁘게 생겨도 좋게 보아줄 감정이 없는데 모양이 그러하니 무시하는 생각이 절로 일었다. ‘쓰레기나 뒤지려고 온 놈이 폼 재기는! 뭐가 잘났다고!’ 속으로 말해주곤 내 할 일을 하였다.

그런데 한 삼분 쯤 지났을까? 다시 그 고양이가 조금 전보다 더 으시대면서 필자의 앞을 지나갔다. 입에 통통한 쥐 한 마리를 물고 나에게 보란 듯이 천천히 우아한 걸음걸이로 지나가는 것이었다. 천천히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잠시라도 무시하는 마음을 낸 내 스스로를 반성하며 용서를 빌었다. 그리고 ‘봄부터 도둑고양이들이 함부로 출몰하지 않은 것이 저 놈 때문인가! 만약 그렇다면 못 생기긴 했어도 격 높은 존재감을 가지고 있는 놈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였다.

 필자가 고양이 연구가가 아니어서 그 습성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고양이도 격이 높은 놈이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인간 세상도 격 높은 사람이 나와야 사회의 질서가 서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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