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태원 박사
미니 총선이라 불리는 국회의원 재보선이 지난달 끝났다. 정당에 따라 명암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민심의 흐름을 읽어내려는 노력이 없이 자신의 논리에만 매달려 주장하던 정당은 참패했고, 자신의 능력보다는 고정지지층의 결집으로 반사이익을 얻은 정당은 승리함으로써 희비가 교차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30%를 약간 웃도는 국민의 참여의식은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민주사회에서 참정권에 대한 국민의 참여의식이 아쉽기도 하고, 그나마 민의를 파악하지 못하는 정치권이 답답하다는 생각이 드는 한판이었다.

이런 현상은 비단 정치 분야의 일만은 아닌 듯하다. 요즘 한창 유망한 분야로 각광받고 있는 정보화시스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전 정부의 녹색성장 정책에 이어 현 정부의 ICT 기반 창조경제 정책을 뒷받침하는 유망한 한 축으로 여겨지고 있는 에너지관리시스템이 그 한 예다.

정보화시스템이 등장하기 이전에 우리 사회와 산업에서 맹활약을 한 것이 자동화시스템이다. 물론 지금도 사회 전반에 매우 활발히 쓰이고 있는 제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왜 지금까지 잘 써오던 자동화시스템을 마다하고 정보화시스템을 원하고 이에 열광하는 것일까?

자동화시스템은 근대 산업사회에 접어들면서 대량 산업생산과 편리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구를 만족시키며 발전되어 왔다. 즉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한번 맞춰 놓기만 하면 현재의 상태와 목표를 비교하며 항상 목표 값을 유지해주는 편리한 기기다. 우리가 난방장치의 온도를 일정한 값으로 맞춰 놓으면 실내온도가 항상 그 상태로 유지되는 건 바로 이 덕분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자동화시스템에도 결정적인 결함이 있었다. 공급자 중심의 제품이라는 것, 그리고 폐쇄적이고 배타적이며 이기적이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공급자가 제공하는 기능 이외에 다른 기능은 전혀 수행할 수 없다. 사용자가 또 다른 기능을 수행하고자 원해도 이는 기본적으로 불가능하다. 물론 공급자의 도움을 받으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모든 사용자의 요구에 공급자가 응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지 않은가.

건물에너지관리시스템을 예로 들어보자. 건물과 여기서 소비하는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해주는 정보화시스템으로, 이것의 전신이 건물자동화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자동화시스템은 건물의 운영 상태를 감시하고 문제가 생기면 알려주며 비교적 단순한 제어기능을 수행한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원인이 무엇이고 어떤 조치를 해야 하는지 알고 싶어도 사용자는 알 수가 없다. 공급자에게 연락해서 알려고 해도 쉬운 일이 아니다. 공급자도 모르는 게 다반사다.

반면 정보화시스템은 이런 기능을 쉽게 수행할 수 있도록 해준다. 사용자의 입장에서 불편한 점이나 어려운 점을 척척 해결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도와준다. 수요자 중심의 시스템이란 얘기다. 자동화시스템에 최근 눈부시게 발전하는 정보통신 기술을 접목시킨 지식정보서비스 산업의 결정체가 정보화시스템이라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아직 시중에는 이런 제품을 찾아보기 어렵다. 기존 자동화시스템에 단순한 기능을 일부 추가해서 정보화시스템으로 둔갑시키곤 한다. 사용자의 요구를 읽어내려 하지 않고 여전히 공급자 자신의 이익과 입장만을 주장하기 일쑤다. 이건 정보화시스템이 아니라 자동화시스템의 또 다른 아류에 불과하다. 시대의 변화와 사용자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노력이 없이는 정보화시스템의 발전은 요원하다. 수요자의 참여와 적극적인 요구가 공급자의 노력과 만날 때 진정한 정보화시스템이 완성될 수 있다.

지난 재보선에서도 수요자인 유권자의 참여와 요구는 저조했고, 수요자의 요구를 읽어내려는 공급자인 정치권의 노력은 더 부족했던 것 같다. 우리의 정보화시스템과 정치는 그래서 닮은꼴이다. 과거 공급자 중심의 산업화 사회에서나 가능했던 이와 같은 구시대적 행태로는 우리 사회를 새롭게 바꿀 수 없다.

수요자인 국민은 적극적으로 선거에 참여해서 참정권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요구를 반영하고, 서비스 공급자인 정치권은 국민의 수요를 최대한 읽어내려는 노력이 만날 때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더불어 국민이 행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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