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민선 1기를 기점으로, 지방자치를 실시한지 20년이 지났다. 그렇지만 아직도 지방자치 정착은 요원해 보인다. 시도지사 자리는 대선후보가 되기 위한 전 단계처럼 여겨지고, 지방의회 의원들은 국회의원들의 선거운동원으로 동원된다. 기초 자치단체에선 잡음과 비리가 끊이지 않는다. 지방자치에 대한 초기의 관심이 환멸로 변질되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자치를 반드시 해야하는 이유가 있다. 지역 간의 격차를 해소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한 국가 내에서 지역 간 격차는 어쩔 수 없이 발생한다. 지리적 여건이 다르고, 인적 구성이 다르고, 역사와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지역 간 격차가 방치되면, 결국 지역 간 갈등으로 인한 국가적 내분이 심화되고, 최악의 경우 내전까지도 발생한다.

지역 간의 격차를 설명하는 학문적 이론으로는 ‘확산 이론’과 ‘내부식민지 이론’이 있는데 그 관점이 상반된다. ‘확산 이론’은 지역 간 격차가 궁극적으로 해소될 것으로 전망하는 반면, ‘내부식민지 이론’은 지역 간 격차가 유지되고 심화될 것으로 전망한다. 따라서 국가와 지역사회는 ‘확산이론’이 적용되도록 해야한다.

내부식민지 이론에 따르면, 한 국가 내에서 경제적 착취를 목적으로 중심지역과 변방지역 간 지배와 종속의 구조가 형성된다. 국가 간의 식민지배에 동원되는 군사력이 없다는 점을 제외하면, 내부식민지는 그 방식이나 결과에 있어 식민지배와 큰 차이가 없다.

식민지배는 경제적 착취의 목적으로 한 국가의 국민들이 다른 국가로 이주해 정치, 경제, 사회적 권력을 장악하고 통치하는 방식이다. 15세기 이후부터 유럽 국가들이 아시아와 아프리카 대륙에 개발과 문명을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자행된 침략수탈행위였다. 20세기 들어서는 일본이 마찬가지의 논리로 한반도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려했다. 식민지의 경제적 수탈에는 군사적, 정치적, 문화적 수단이 동원되고, 인종차별, 정치적 압제, 문화적 종속 등이 수반된다. 원주민은 인종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식민침략 국민에 비해 열등하다는 고정관념이 식민지에 주입된다.

식민지 시절 이식된 지배 구조와 문화는 해방 이후에도 쉽게 제거되지 못하고 후유증을 유발한다. 식민지시절의 외세 권력이 국내 권력으로 대체될 뿐이다. 내부식민 지배 구조 하에서는 중앙과 지방 간에 경제적 격차가 지속되고, 경제적 정책 결정권이 중앙에 집중되며, 경제적 격차를 정당화하는 문화적 우열관계가 형성된다. 중앙이 높은 이윤과 고임금을 통해 부를 축적하는 반면, 지방은 저기술 저임금 산업 위주의 경제구조를 유지한다. 지방의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언어나 문화가 중앙에 비해 열등한 것이라고 인정하고 저임금과 직업적 종속관계를 수용한다.

지금의 대한민국의 지역사회는 내부식민지 이론에 잘 부합한다. 지방경제의 중앙종속 구조는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정치적 결정도 모두 서울에서 서울사람들에 의해 내려진다. 지방자치는 겉치장과 형식적 요건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지방자치 단체는 중앙정부의 재정지원에 의존해야 한다. 자치단체장은 중앙정당이 선발한 후보들이 차지하고 있다. 지방의회가 있지만, 입법기관으로서의 지위와 권위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지방권력의 요체인 검찰과 경찰은 여전히 중앙에서 파견된 인사가 점유하고 있다.

지역사회가 마치 중앙의 식민지처럼 지배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는, 권력과 부가 중앙에 몰리고, 지역사회의 결핍과 배제는 해소되지 못한다. 중앙과 변방의 격차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이고 영구적인 것이 된다. 마치 지방에 큰 특혜를 주는 것처럼 내리는 중앙의 결정들도 대부분 지역주민들보다는 중앙권력의 입지강화를 위한 것이다. 4대강 사업이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중앙정부가 그 지역의 지리와 환경과 경제현실을 잘 알고 있는 해당 지역주민들을 무시하고 배제한 채 시행한 탓이다.

대한민국이 진정한 민주국가와 복지국가가 되려면 ‘내부식민지 이론’이 아닌 ‘확산 이론’이 적용되는 국가로 바꾸어야 한다. 즉 중앙과 지방의 격차가 고착되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해소되는 국가가 되어야한다. ‘확산 이론’이 적용되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지방자치이다. 그 이유는 다음 기회에 설명하기로 한다.

장호순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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