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를 지나다 보면 드물지 않게 ‘지방자치단체 평가에서 최우수단체로 선정’이라는 현수막을 보게 된다. 신문에 난 대학광고에서도 ‘대학평가에서 교육개혁 최우수대학으로 선정’ 등의 문구를 접하기도 한다. 자치와 자율을 가장 강조하는 지방자치와 대학자치 부분에 관련된 사항이다. 우수한 단체나 대학으로 평가받은 경우에 나름대로 광고효과가 있을지 모르나 평가결과에 연연해하는 모습들이 의연하지 못하다. 교육부에서는 학교, 대학, 지방교육청에 대한 평가를 법제화 해놓고 있다. 행정자치부에서도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평가를 제도화하려고 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는 지방자치단체간, 대학간, 학교간의 경쟁을 강화하여 질적인 향상을 기하려는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교육부의 평가제도는 대학자치와 학교자율성으로 약화된 중앙정부의 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새로운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행정자치부에서 평가제도를 도입하면 마찬가지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자치단체와 학교는 로비창구로서 감독부서 공무원을 부시장이나 총장 등으로 영입하고 있는 경우까지 나타나고 있는 실정하에서 평가제도는 지방자치단체와 학교 및 대학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현저히 훼손시킬 염려가 있다.

교육·행정 평가제 ‘통제 발상’
자치란 어떤 조직의 활동에 의하여 영향을 받는 당사자들이 법령의 범위 안에서 자기책임하에 주어진 업무를 처리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자기 책임이라 함은 합목적성에 대한 정책적인 판단의 자율성 즉, 간섭의 배제를 의미한다. 감독기관의 통제는 자치조직이 법령을 준수했는지 여부에 관한 법적감독에 한정되는 것이지 합목적성에 대해서 관여하는 것은 허용되지 아니한다. 왜냐하면 정책적 당부에 감독관청이 개입하는 곳에 자치는 더 이상 존립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행정자치부는 지방자치단체의 법령준수를 제외하고는 지방자치단체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

평가란 이름으로 대학과 학교 및 지방자치단체를 서열화하고 더구나 그 평가결과에 대하여 행정, 재정적인 불이익이나 인센티브를 관련시키는 것은 자치와 양립하지 아니한다. 더구나 평가기관이 권고하는 정책을 도입하지 않았다고 하여 불리한 평가를 하는 것은 피평가기관의 자치권에 대한 명백한 침해가 된다. 학부제, 성과급제 등도 바로 평가라는 강제수단을 통하여 법적인 근거도 없이 도입된 제도중의 일부이다. 이들 평가제도는 대학자치, 지방의 교육자치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제도이다. 평가에 의하여 법치행정의 원리는 실종되고 평가에 의한 행정으로 대치된 무제한적인 통제를 초래한다.

평가를 통하여 획일적인 잣대를 강요하는 경우에 자치로써 달성하려는 창의성과 다양성은 찾기 어렵게 되고 실적위주의 경직된 결과를 가져오기 쉽다. 나아가서 책임관계를 불명확하게 하여 자기책임성을 침해하게 된다. 예컨대 행정자치부는 얼마 전까지 경영행정을 강조하여 지방자치단체로 하여금 민관합동기업(이른바 제3섹터)을 운영하도록 사실상 강제하였다. 운영결과 실패하는 사례가 늘어나자 슬그머니 빠져버렸다. 잘되면 중앙정부의 덕이고 잘못되면 사실상의 강제에 순종한 시행한 지방자치단체의 실정으로 치부된다. 여기에 평가에 의한 제재까지 결부된다면 자치행정은 완전히 실종되고 만다. 교육자치나 대학도 마찬가지이다. 교육부는 말로는 자율을 강조하면서 뒤로는 평가라는 수단을 통하여 타율적이 될 수밖에 없도록 만들고 있다. 평가에 의한 사실상의 강요에 의해서 억지로 실시하고 있는 학부제 등이 실패하더라도 어느 누구 책임지는 사람이 없게 된다.

‘획일적 잣대’ 집어치워라
물론 자치행정의 경우에도 평가는 필요하지만 자신이 설정한 목표와 그 실현정도를 비교하여 피드백 시키는 자체평가가 되어야 한다. 경험의 교류차원에서 다른 자치체와 비교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외부에서 마련한 잣대로 수직적으로 평가하는 외부평가제도는 자치와 양립될 수 없는 발상이다. 이에 교육부의 대학평가, 교육청 평가, 행정자치부의 지방자치단체 평가. 광역단체의 기초단체평가 등은 재고되어야 한다. 나아가 언론사, 경영협회, 능률협회 등 민간단체에 의한 평가도 무책임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자제되어야 한다.
<인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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