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초에 텃밭에 나갔더니 윗집 아저씨가 보자마자 “왜 김장배추 안 심어요?”라 물었다. “벌써 심을 때가 되었나요?”라 했더니, 상추, 쑥갓 등 봄채소 심었던 자리를 가리키며, “여기다 심으면 되겠네! 벌써 다들 심었는데…, 씨앗으로는 늦었고 모종이라도 사다가 심어 봐요” 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고민이 되었다. 작년에 실패한 경험이 떠올라서였다. 작년에도 때를 놓치고 모종을 사다가 심었었는데 진딧물과 벌레가 성하여 아예 심은 것을 몽땅 진딧물과 벌레들에게 바치다시피 했기 때문에 김장을 하지 않았었다. 배추 몇 포기라도 사다가 김장을 하면 되었었는데 집사람이 속이 상해서 그랬던지 아예 김장을 하지 않았다. 친지들이 맛보라며 한두 포기씩 준 걸로 겨울을 지났었다.

 초보 농사꾼이지만 다른 것은 그런대로 자라는데 유독 김장용 무 배추는 벌써 2년째 실패했다. 첫해에도 자라다 만 우리 집 채소밭을 보며 이웃집 아주머니는 “저걸로 어떻게 김장을 해요! 우리 배추 남으니 줄 테니까 그걸로 김장하세요”라고 했다. 그럴까 생각하고 그 말을 친한 분에게 말 했더니 그 분이 하는 말이 “진딧물 먹는 것이 농약 먹는 것 보다는 낫잖아요?”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씻고 또 씻어서 김장을 했었는데 작년에는 아예 김장도 못해보게 되었던 것이다.    

 심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는 옛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심기로 결정하고 추석 연휴가 시작 되자마자 배추 모종 30개, 무 모종 40개를 사다가 심었다. 두 번 실패로 인해 양을 축소했다. 며칠간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었더니 모종은 땅에 제대로 안착을 했고, 앞으로 두고 볼 일이지만 지금은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텃밭을 가꾸다 때때로 갈등을 겪는다. 농약과 화학비료에 대한 유혹이 그 중심에 있다. 채소 잎사귀에 붙어 있는 벌레의 알을 보거나 기어 다니며 잎을 갉아 먹고 있는 곤충의 애벌레를 보았을 때, 또는 떼로 달라붙어 고추와 방울토마토의 즙을 빨아 먹고 있는 노린재 등 곤충을 보았을 때, 그 때마다 농약을 사용하고 싶은 충동이 일곤 한다. 그리고 옆집 밭에 심은 작물은 파랗게 윤기가 나는데 내 텃밭의 작물은 누렇게 윤기가 없을 때 화학비료를 쓰고 싶은 충동이 인다. 이때 이는 갈등이 ‘바로 유기농법을 고집할 것이냐 아니면 저농약농법으로 갈 것이냐’하는 갈등이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이미 답은 정해져 있다. 필자처럼 자신이 먹을 작물을 기르는 소규모 텃밭 농사는 생산의 량을 높이는 것 보다 작물의 질적 순도를 높이는 것이 현명한 방향이기 때문이다. 이미 유기농이 나아갈 방향이라면 생산성에 중점을 둔 사람들과 경쟁하지 않아야 되는데, 범부의 호승심이 발동하여 그만 순간순간 본분을 망각하고 갈등하는 것이다.

텃밭 농사 3년에 얻은 교훈은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올해 들어 작년에 비해 땅심이 좋아진 것이 확연히 느껴진다. 올해 들어 예년에 비해 벌레도 현저히 생기지 않고 있고 농작물의 당도와 싱싱함도 좋아졌다. 방울토마토는 9월 중순이 넘은 지금도 맛있는 토마토가 주렁주렁 열리고 떨어진 토마토가 오래도록 썩지도 않는 상태다. 몇 년 전에 일본의 썩지 않는 사과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들었었는데, 필자의 텃밭도 지금처럼 해나간다면 언젠가는 그처럼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땅심이 좋아진다면 병충해가 침범하지 못하는 날도 오리라 믿는다.

 국가의 경영도 텃밭 가꾸기와 근간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정치의 지향점이 진정으로 국민의 행복에 있다면 유기농을 기르는 농부처럼 하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이로운 작물 생산에 목표를 둔 농부는 눈앞의 농작물 상태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그 땅심을 살리는데 혼신을 다한다. 그런데 사람에게 이로운 작물을 재배한다면서 농약과 화학비료를 뿌려 댄다면 누가 그 농부를 믿겠는가? 현재의 정치인들이 신뢰를 잃은 원인이 여기에 있다. 국가개조가 바로 땅심을 돋우는 작업인데 그게 용도폐기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는 시국이다.

김백호 회산서당 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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