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 담긴 나를 알면 ‘마음의 힘’ 키울 수 있죠”

“사람들은 정신증 환자들을 이상하게 봐. 무슨 벌레 보듯이.
큰 스트레스 연타 세 방이면 너나 할 것 없이 걸릴 수 있는 게 정신증인데, 자기는 죽어도 안 걸릴 것처럼.”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신경정신과 의사 조동민의 대사)

마음도 아프고 병든다. 언뜻 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 사람들도 저마다 크고 작은 ‘마음의 병’을 끌어안고 산다. 너도 나도 예외 없다.  “마음의 병을 치료하려면 마음 깊숙이 자리한 상처의 근원적 원인부터 알아내야 해요. 그러려면 자신의 마음 상태를 자주 들여다봐야 하죠. 간혹 신체화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해요. ”
오현숙 고양미술심리상담연구소장의 말이다. 오 소장은 범죄피해자심리치료연구소장이면서 서산교도소 재소자심리치료 봉사활동도 한다. 가해자와 피해자, 극과 극의 마음속을 드나들고 있으니 웬만한 사람 속은 헤아리고도 남을 법하다. 하지만 무턱대고 들여다본다고 남의 속이 보일까. 마음의 상처를 다른 사람에게 내보이는 것 또한 어디 쉬운가. 이때 ‘미술’은 상담자와 피상담자 간의 벽을 허무는 데 유용한 매개체가 된다. “말(언어)은 뇌에서 정리돼 나오기 때문에 자기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방어기제로 쓰일 수 있어요. 그러나 미술은 그림 혹은 색이라는 상징을 통해 자신의 마음 상태를 무의식적으로 드러내게 하죠.”
마음만 드러내는 게 아니다. 불안할 때 어딘가 끄적거리다 보면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처럼 그림 그리기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주기도 한다.

오현숙
고양미술심리상담연구소장. 미술을 통해 마음의 상처를 치료해주는 미술심리치료전문가다. 1990년부터 고양시 문화예술 활동에 적극 참여하면서 고양예총과 고양미술협회 산파 역할도 했다. 고양예총 부회장, 고양미협 회장, 고양여성작가회 초대회장, 고양문화재단 초대 이사 역임. 한서대 아동미술학과 교수(미술치료학 박사). 한서대 학생생활상담소장, 성폭력상담소장.

방어기제 없는 미술심리치료
오 소장이 미술심리치료 분야에 발을 들여놓은 건 1997년. 당시 서울 예술의전당 미술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교육현장에서 강의도 하면서 ‘미술’을 통해 아이들이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리고 색칠하고 만드는 미술활동엔 아이들의 ‘마음’이 들어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아이들이 건강하고 창의적으로 자라게끔 하는 교육에 관심이 컸어요. 미술로 창의력과 인성을 기를 수 있다는 건 확인했죠. 그러면 마음의 건강을 위해선 어떤 교육이 필요할까, 고민하던 차였어요.”
때마침 국내에선 미술치료에 대한 관심이 싹트고 있었다. 미술과 치료를 접목한 미술치료야말로 그가 찾던 해답 같았다. 미술치료학 박사 과정을 마친 후 20년간 아동미술교육현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일산오스아트스쿨(2005년)을 열었다. 단순한 미술교육 프로그램이 아닌 건강한 정서를 추구하는 교육이념이 입소문 나면서 ‘미술로 행복해지는 아이들’로 명칭을 바꾸고 일찌감치 고양시를 대표하는 교육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2006년 고양미술치료센터(고양 미술심리상담연구소 전신)를 설립하면서 다문화가정 상담, 성폭력피해자 상담, 학교폭력 피해자 심리치료 등 공익적인 활동에도 본격적으로 나섰다.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선 가족과 사회의 건강이 우선돼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2011년엔 상담소가 범죄피해자지원센터 협력기관으로 선정되면서 고양·파주 범죄피해자들의 상처를 미술로 치료해주는 일도 맡고 있다.

미술심리치료 내담자들의 그림. 미술은 마음 상태를 드러내 주는 유용한 매개체다.

마음의 힘 커지면 상황 정리 수월
“마음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다 보면 상대와의 갈등, 폭력으로 인한 상처보다 더 심각하게 곪은 자신의 상처와 맞닥뜨리게 되죠.”
범죄 가해자는 물론 피해자도 미술심리치료에선 자신의 내면 들여다보기를 먼저 한다. 가해자는 폭력성이 마음속에 들어앉게 된 이유를 찾고 털어내는 지난한 치료 과정을 거쳐야만 폭력의 반복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피해자도 다르지 않다. 마음 깊숙이 자리한 자신의 상처 치료가 우선이다. 그래야 겉으로 드러난 상황을 정리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이 생긴다. 그 힘을 키우면 위험상황에 노출될 가능성도 줄일 수 있다.
“상처는 다른 사람에게 또 다른 상처를 줄 수 있어요. 그냥 ‘내 몫’이라고 싸매고 있지 말고 작은 것이라도 풀어야 하죠. 그때그때 가족이나 친구에게 털어놓으면서 해결하는 게 한 방법이에요.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라면 전문가를 찾는 게 좋죠.”
오 소장은 “상처의 근원을 찾아가다 보면 대부분 가족이 종착점이더라”며 “서로 공감하고 협력하며 지지하고 수용하는 건강한 가족관계야말로 건강한 마음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범죄피해자, 성폭력피해자, 재소자 외에도 다문화가정, 새터민 미술심리치료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는 그는 “미술심리치료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다시 살아갈 힘’을 얻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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