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굴지의 대기업 회장 딸이 요즘 세간의 화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딸이면서 노태우 전 대통령 외손녀인 민정씨가 해군 사관 후보생으로 입영하면서 시작된 관심이었다. 사람들은 초일류 대기업 오너의 딸이 왜 험하고 힘든 여군의 길을 선택했는지 궁금해 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군인 출신이었던 외할아버지 노태우 전 대통령의 영향으로 군인을 선택했다는 말도 있다. 여하간 이처럼 특별한 그녀의 여군 입영 소식은 이후 대단한 뉴스거리로 많은 후일담을 남겼다.

하지만 그동안 군인 인권 문제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일해 온 나로서는 그녀의 여군 입대가 또 다른 걱정을 품게 했다. 이는 ‘최민정’이라는 특별한 개인 때문에 갖게된 걱정은 아니었다. 앞으로 그가 걸어가려는 우리나라 여군의 슬픈 현실을 생각하니 그랬다. 이는 최근 우리나라 여군과 관련한 몇 가지 일례만 살펴봐도 이유를 알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육군 오혜란 대위 자살 사건이었다. 오 대위는 생전 자신의 남자 상관이었던 노 아무개 소령의 폭언과 성적 요구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차마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는 노 소령의 온갖 비열한 학대와 가혹행위로 인해 오 대위는 극심한 고통을 받아야 했다.

그러다 사건이 벌어진 것은 지난 2013년 10월 15일 밤이었다. 오 대위는 자신이 근무하던 부대 근처 주차장에서 차량 안에 번개탄을 피워 자살했다. 이때 자동차 블랙박스에 녹화된 영상에 의하면 오 대위는 죽기 전, 한시간 반 동안이나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한없이 흐느껴 울었다. 나는 한 시간 반 동안이나 처절하게 울던 오 대위가 끝내 자살을 선택한 심정을 생각하면 그 어떤 말로도 그의 영혼을 위로할 길이 없다.

“여군! 여군! 여군! 그 놈의 여군 비하 발언, 듣기 싫고 거북했습니다. 제 억울함 제발 좀 풀어주세요. 누구라도. 저는 명예가 중요한 이 나라의 장교입니다.”

오 대위가 남긴 유서중 일부였다. 하지만 이처럼 억울하게 죽어간 오 대위의 진실이 세상에 알려지기 까지 다시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오 대위의 억울함보다 군의 명예를 더 중요했던 여긴 일부 세력이 사건의 진실을 축소, 은폐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오 대위 가족으로부터 도움을 요청받은 군 인권단체가 노력하면서 진실의 일부가 세상에 전달되었고 결국 오 대위는 일반사망에서 순직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오 대위를 죽음으로 내몬 진짜 가해자, 노 소령의 처벌은 지극히 형식적이었다. 노 소령의 모든 범죄 사실이 재판을 통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군사법원은 실형이 아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문제는 이러한 사례가 오 대위 사건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 대위 사건만큼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뿐 또 다른 제2, 제3의 오 대위 사건은 차고 넘친다. 또한 수면 아래 잠겨있는 또 다른 여군을 상대로 한 상상 밖의 인권 유린 사례 역시 헤아릴 길이 없다.

그런데도 군의 태도는 요지부동이다. 내가 군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이런 군을 누가 존경하겠는가. 나는 더 이상 제2, 제3의 오 대위와 같은 불행한 여군이 발생하지 않도록 군의 진실한 각성을 촉구한다. 의무가 아닌데도 군인의 길을 선택한 여군은 진정한 애국자다. 그 여군을 당당한 군인으로 예우하라. 그것이 애국을 선택한 우리 딸들에게 국가가 해야할 마땅한 도리임을 명심하라.

고상만 인권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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