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본격적으로 날이 추워질 무렵이면 언론에서는 난방비 문제를 앞다퉈 다룬다. 난방비가 지나치게 많이 나온 집을 사례로 그 현상과 원인에 대한 설명을 해달라 한다. 하지만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매년 비슷한 내용이 반복적으로 보도되지만 국민은 여전히 혼란스럽기만 하다.

올해는 채 겨울이 오기도 전에 난방비 문제가 화두가 되고 있다. 한 유명 연예인이 사는 아파트 단지에서 난방비 관련 시비가 폭행사건으로 비화되며 세간의 주목을 받으면서부터다. 일부 블로그에서는 이 연예인이 ‘난방열사’라 불리고, 생활 속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용기와 노력을 평가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이와 같은 문제가 생겼을까? 겨울철이 되면 전국의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는 난방비 관련 시비가 연일 끊이지 않다시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못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먼저, 소비자에게는 난방 제품에 대한 선택권이 없다. 전문성이 없는 소비자로서는 건설사가 알아서 좋은 제품을 제대로 설치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하지만 만일 건설사가 그 바램을 반영해주지 못한다면 소비자 요구가 제품에 반영될 기회는 거의 없다. 공급자와 수요자가 만나는 시장이 왜곡되고, 기술의 진화를 가로막는 장벽이 될 수 있다. 또 대부분 중소기업인 제조회사는 납품을 위해 건설사의 눈치를 보는 구조다. 시공이 잘못되면 사는 동안 두고두고 피해와 갈등을 낳을 수 있다. 소비자 요구를 제품에 반영하는 경쟁을 유도하는 조치가 필요한 이유다.

둘째, 우리의 난방방식은 우수한 반면 시설이 복잡하고 관리가 매우 어렵다. 그래도 최근 기술적 측면에서 많은 문제점과 해결책이 제시되었다. 하지만 이게 현장에 잘 적용되지 않는다. 왜 그럴까? 기존의 시설과 운영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고, 이제라도 개선을 서두르자고 말할 용기와 시행 의지가 필요하다. 적지 않은 비용도 따른다. 한마디로 매력이 없는 정책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게다가 여러 부처와 기관이 관계된 사안이니 먼저 나설 이유도 없다. 거창한 정책 못지않게 갈등과 불공정을 해소하는 섬세한 정책이 존중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셋째, 우리의 공동주택 관리체계는 전문적이지 못하다. 단지별로 입주자대표회의가 있고 여기에 관리권이 주어진다. 대부분의 단지는 외부 전문 업체에 그 관리권을 위임하는 것이 관행이다. 이 관리주체는 전문성이 없는 대표회의의 통제를 받는 구조로 권한이 거의 없다. 따라서 일상적이고 수동적인 점검 위주의 관리업무만을 수행한다. 관리주체의 전문성을 따지기 전에 이들에게 문제의 근본원인을 찾아서 해결할 것을 기대하는 건 애초부터 무리다. 비용이 수반되는 경우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서비스 수준의 향상을 위해 관리체계 개선이 시급하다.

공동주택은 하나의 지역공동체다. 관리실과 기계실을 중심으로 모든 세대와 시설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공동 시설은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계량기와 같이 세대 내 장치가 고장이 나거나 검침결과가 왜곡되면 다른 세대의 난방비에 고스란히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결국 지금과 같은 관리체계 아래서 계량기는 공동의 자산이란 얘기다. 이것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데 공정한 관리를 기대하는 건 애당초 불가능하다. 문제가 되는 건 계량기만이 아니다. 공동시설의 관리에 입주민이 더 관심을 갖고, 투자에도 너무 인색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의 난방비 시비가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이태원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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