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사람들 9년째 연극무대서 열정 쏟는 이영신씨

▲ 호수공원을 산책하며 아이디어를 궁리하는 이영신씨.“연극으로 사고 후유증을 날려버린다”는 그는“연극은 생활의 활력소이자 살아가는 힘”이라고 말했다.

19년 전 붕괴 때 극적 회생
극단 ‘행주치마’ 단원 활동

최근 고양시청소년수련관 무대에 오른 여성극단 행주치마(대표 유은홍)의 ‘그 여자의 소설’이 관람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그 여자의 소설’은 ‘일제시대 때 아들을 낳지 못하는 종갓집 큰며느리가 작은댁을 들여 아들을 본다’는 내용이다.

이번 공연에서 작은댁을 큰 마님에게 소개시켜주고 종갓집에서 품을 파는 아낙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극의 흐름을 유쾌하게 이끈 ‘귀분네’ 역을 맡았던 연극인 이영신(46세)씨. 그는 “연극을 하면서 사고의 아픔을 잊었다”고 한다.

그가 잊고자 하는 것은 다름 아닌 1995년 서울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다. 이 사고로 502명이 숨지고, 937명 부상, 6명 실종 등 총 1445명의 사상자가 났다. 국내 대형재난사고 중 가장 큰 인명피해를 낸 사고였다. 이씨는 그 무렵 지하 1층 수입코너(메이플시럽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갑자기 쿵 하면서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서 진열대 안으로 몸을 숨겼었다”며 그 당시 상황을 회고하는 이영신씨. 옆에 있던 무거운 진열대가 덮치면서 그의 허리가 깔렸다.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인데 금세 암흑천지가 되었다. 여기저기서 살려달라는 비명소리가 한동안 들렸고, 얼마 지난 뒤 가는 숨소리만 들릴 뿐 주변엔 적막감이 흘렀다.

그때 이씨는 A동과 B동 중간 기둥과 기둥 사이의 좁은 통로(사고 발생 11일만에 기적적으로 구조된 최명석씨도 같은 공간으로 기억)에서 허리통증과 무서운 공포에 시달리며 몇 시간 동안 호흡곤란을 겪으며 보냈다. 정신줄을 놓기 일보직전, 안양소방대원들이 좁은 통로를 드릴로 뚫어서 5시간여 만에 극적으로 구조됐다.

그리고 강남성모병원 응급실로 실려 가며 희미하게 남아있던 정신줄을 놓았다. 다행히 그날은 의료진들이 기도모임을 한 후 응급실에 남아있어서 응급처치가 신속하게 이뤄졌다. 그 덕분에 이씨는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

나중에 병원으로 달려온 이씨의 남편은 “살아줘서 고맙다”며 만세를 부르기도 했다. 이후 허리 부상으로 1개월 동안 일어나지 못했고, 6개월여 동안 병원신세를 졌다. 그동안 남편의 극진한 간호를 받으며 차차 회복도 됐다. 하지만 1년 가까이 물리치료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비가 오면 욱신거리는 통증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특히 윗집 아이들 뛰는 소리에 사고 당시의 악몽이 떠올라 우울증까지 찾아왔다.

그러던 중 우연히 ‘극단 행주치마’ 주부극단 1기 모집 정보를 알게 됐다. “어릴적부터 연극을 좋아했었고, 학예발표회 때도 가끔 연극을 했으며, 그 꿈이 남아있었다”는 이씨가 놓칠 리 없었다. 행주치마 극단에 들어가는 행운을 잡은 후 수습기간을 통해 체계적으로 연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4년 전부터는 경기도 연극협회 회원으로 정식 등록돼 출연료를 받으며 연극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2004년 ‘아내를 사랑하세요’를 시작으로 2014년 현재까지 총 20여 작품 속에서 기생, 사또 등의 역을 맡았다. 홈쇼핑, 단편과 장편 영화 등에도 다수 출연했다.

이씨는 “공연 때문에 늘 분주하게 움직이면서도 가끔 호수공원과 고봉산을 찾아 아이디어를 찾고 건강도 다진다”고 한다. 그가 속한 행주치마는 꾸준히 공연 활동을 하는 여성극단으로, 무엇보다도 고양시 지원을 받아 공연 대부분을 무료로 한다.

이영신씨는 “소외된 이웃을 위한 찾아가는 연극 등 더욱 보람된 일을 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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