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여명 주민 모여 젯상 차려

통장이 주민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며 흰 종이를 지정자 만신에게 주자 만신은 그 사람에 대해 축원하고 종이를 불살랐다.

70여명 주민 모여 젯상 차려
만신, 주민들에게 축원 기원

지난달 25일 오후 8시부터 장항동 산염마을에서는 도당제를 올렸다. 2년 전 도당제가 끝난 후 당주로 선발된 박진석씨가 이번 도당제를 준비했다. 당주는 건강하고 무탈하고 부정이 없는 정결한 사람 중에서 선발한다. 정발산 도당굿과 최영장군 위령제를 맡아서 올리고 있는 지정자 만신이 2년 전부터 산염부락 도당제를 지내고 있다. 

산염마을 도당터에는 도당나무로 섬기고 있는 수양 버드나무와 올해 9월에 주민들이 세운 커다란 산염마을 도당영신단(都堂靈神壇)이 있다. 마을 주민 70여명은 초저녁부터 모여 젯상을 차리고, 주민들이 먹을 음식을 준비했다.

도당제를 올리기 전에 계통문을 돌려서 주민들로부터 일정 금액을 거출하고 그 비용으로 제물을 준비한다. 밤, 대추, 사과, 배, 감, 약과산자, 북어, 달떡 등을 올려 젯상을 마련했고, 젯상 아래에는 터주신, 구능신, 호귀신, 서낭신(소족), 대감신(돼지머리), 지신신, 성주신, 안당신(소족)에게 올릴 제물이 준비됐다.

팥시루떡 위에 술, 통북어, 삶은 삼겹살을 기본으로 준비하고, 서낭신과 안당신에게는 소족을 더 올리고 대감신에게는 돼지머리를 올렸다. 당주 박진석씨는 “예전에는 시루 8개에 떡을 하고 돼지를 두 마리씩 잡아 8각을 떠서 각 시루에 한 덩이씩 올렸지만 이제는 많이 간소해졌다”고 한다.

지정자 만신이 시키는 대로 고춧가루에 잿물을 섞어서 구정물을 만들어서 부정을 가셔내는 것으로 도당제를 시작했다. 순서대로 절이 끝난 후에는 각자 어느 정도의 돈을 올렸다.

그리고 도당나무로 가서 술과 제물을 올렸다. “이 사람아 어서 빌어,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어”라며 당주는 아내에게 농을 하고, 당주 부부는 잠시 두 손을  모아 비비며 마을의 안녕과 각 가정의 평안을 빌었다.

이 과정이 끝나면 만신이 주관하여 주민들 모두를 위해 치성을 드렸다. 5가지 깃발을 돌돌 말아서 들고 운세 뽑기를 했다. 뽑는 기의 색깔에 따라 길흉화복을 점치며 만신은 저마다의 사람에게 축원을 해줬다. 흰 기를 뽑은 주민에게는 “동서사방 다니느라 애썼다. 내년에 감투 쓸 일 있냐? 감투 쓰게 해줄게”라고 하고, 초록색 기를 뽑은 주민에게는 “3~4년 동안 힘들었겠네. 빛 좋은 개살구였어. 그래, 혼자 많이 울었구나. 입만 조금 다물면 괜찮아. 나는 착한데, 성질이 지랄이야. 입으로 공을 다 깨는 게 문제야”라고 말했다. 만신의 축원을 듣는 주민들은 “쪽집게네. 족집게야”라고 하며 초록기를 뽑은 주민을 측은해 하다가 또 금방 웃음보따리를 터트렸다.

마지막으로 마을 사람들 숫자만큼 준비한 흰 종이를 태우는 시간이다. 부정을 불사른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통장이 주민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며 흰 종이를 지정자 만신에게 주면 만신은 그 사람에 대해 축원하고 종이를 불살랐다.

장항1동 산염마을의 도당제가 언제 시작됐는지 정확한 때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도당제 장부에 ‘소화 ○년~’이라는 기록으로 보아 꽤 오래된 것은 틀림없다. 신문식 노인회장에 따르면 산염마을에는 포구가 있었고, 서울로 실어갈 소금을 산처럼 쌓아놨다고 해서 산염마을이라고 불렀단다.

“뱃사람들이 치성날짜를 잡아놓으면 마을 사람들이 나가지도 못하고 들어가지도 못했다는 거야. 그 사람들이 돈을 걷어서 소를 잡고 굿을 했대. 근데 100여 년 전부터 배가 안다니니까 돈이 없잖아. 그러니까 고사로 지내자고 해서 주민들끼리 지냈지. 그때는 저 벌판 백신부터 무검 사람들까지 한꺼번에 했는데 해방되고 6·25 지나고 나서 따로 하겠다고 나갔어.”

늦은 시각, 도당제는 끝났어도 주민들은 여기저기 모여앉아 얼큰하게 끓인 국 한 대접씩 먹고, 서로 떡을 떼며 밤을 밝혔다. 오랜 전통을 가진 산염마을의 도당제는 마을 주민들이 함께 모여 정도 나누고 서로의 속 깊은 고통도 위로하며 대동이 하나 되는 잔치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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