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만의 일이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오래 전부터 망가지는 자연과 무너지는 생태계를 살리기 위한 자연보호운동이 활발하다. 정부 기관이나 사회 단체 혹은 뜻있는 개인들이 경제적 부담과 귀한 시간을 바치며 엄청나게 애들을 쓰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칼하게도 자연이 가장 잘 보호되고 있는 곳은 휴전선 비무장 지대처럼 인간의 발길이 안 미치는 곳이지 자연보호의 손길이 미치는 곳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보호가 필요 없으니 제발 가만히 내버려만 두세요”다.

교육은 어찌 보면 자연과 달리 가장 의도적이고 인위적인 사업이다. 그러나 요즘 우리 교육에 대해서도 비슷한 주장과 하소연이 있는 것을 알고 있다. 교육은 본래 교사가 있으면 학생(혹은 학부모)이 찾아와 가르쳐 주기를 부탁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즉 교육의 일차적 주체는 교원이다. 이런 고전적 교육관을 굳이 말하는 것은 문제도 많고 말도 많은 우리 교육을 살리기 위해서는 제발 좀 교육전문가인 교원(교장)에게 교육(학교)을 맡겨 주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하는 말이다.

국회와 지방의회에는 교육관련 위원회가 있고, 시도에는 교육을 전담하는 교육위원회가 있고, 또 교육부와 교육청 같은 행정관청이 있어서 일선 학교 교육을 지원하는 일을 한다. 그러나 왜 그리 간섭이 심하고 요구가 많은지 도무지 정신을 못 차리게 한다. 거기다가 감사원을 비롯하여 각종 감사 기구와 학교운영위원회라는 심의기구, 언론기관과 시민단체 등 감시의 눈초리가 번득이고 있다. 경찰과 정보기관은 물론 지역주민들도 감시꾼이다. 그뿐인가 숱한 학부모의 목소리도 수용해야 한다. 학생들은 휴대폰으로 혹은 인터넷으로 스승을 고발한다. 부하직원들조차 노조를 만들어 교장에게 압박을 가한다. 교원, 특히 경영을 맡은 교장에게 있어 이건 족쇄에 수갑을 채운 데다가 숫제 지뢰밭이다.

지뢰를 밟지 않으려면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면 된다. 아무 것도 아니하는 것이 장땡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실수도 없고 실패도 없다. 소신 있는 교육, 창의성 있는 교육을 어찌 요구하는가.

비무장지대에서는 노루, 멧돼지, 두루미 같은 동물이 즐겁게 뛰고 난다. 비료를 주거나 농약을 뿌리지 않건만 온갖 희귀식물까지도 싱싱하게 자라난다. 남북의 병사들이 살기 띤 눈으로 동포의 심장에 총구를 마주 겨누고 있는 살벌한 그 가운데서도 생태계는 건강하고 아름답게 복원돼 있다.

교육도 자연처럼 좀 내버려둘 수는 없는가. 개혁도 지원도 그만두고 좀 가만 내버려두고 한 십년 지켜보면 어떨까? 지금보다 교육이 더 망가질까? 괜한 잠꼬대를 하고 있음을 나도 모르진 않는다. 답답해서 해보는 소리다.
<화수고등학교 교장>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