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 심심찮게 보도되는 미담 기사가 있다. 생활고에 시달리다 결국 삶을 포기하려던 누군가를 긴급 출동한 경찰관과 소방관이 구조했다는 사연이다. 이들 경찰관과 소방관의 노고야 고맙고 또 고마운 일이니 말해 무엇 할까. 하지만 이러한 기사를 읽을 때마다 내가 늘 궁금한 점이 하나 있다. 자살을 시도했던 사람도 정말 자신을 구조해 준 사람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을까 싶은 것이다.

2014년 3월 어느 날이었다. 고양시 일산서구 한 모텔에서 70대 아버지와 40대 아들이 나란히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 있었다. 사망한 아버지는 7년째 치매를 앓고 있었고, 함께 자살한 40대 후반 아들이 돌봐 왔다고 한다. 경찰 조사결과, 아들은 7년 전부터 치매 증상을 보인 아버지를 극진히 모셔온 효자였다고 한다. 한편 아버지가 발병한 초기 5년간은 상황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병원에서 치료를 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건 발생 2년 전, 아들의 사업이 실패하면서 부터였다. 사업 실패와 이로 인한 생활고로 더 이상 아버지를 병원에 모실 수 없게된 아들은 이후 자신이 직접 아버지를 집에서 수발했다고 한다. 하지만 한계가 있었다. 아버지의 병환도, 그리고 실패한 사업도 더 좋아질 가능성이 없자 아들은 최후의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결국 그날 밤 아들은 유서를 쓴 후 구입한 번개탄에 불을 붙이고 아버지와 나란히 누웠다. 이어 사람들이 그들 부자를 다시 발견했을 때는 재만 남은 번개탄과 절망이 담긴 유서 한 장만 남아 있었다고 한다.
이때 상상해보자. 만약 기사처럼 운 좋게도 경찰관과 소방관이 출동하여 이들 부자를 죽음에서 구해 냈다고 치자. 죽어 가는 사람을 구했으니 잘한 일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과연 다시 살아난 이 아들과 아버지는 또 어찌 살아갈까. 정말 아무 일 없이 “그래. 다시 한번 살아보자”며 캠페인속 그것처럼 멋지게 일어설까.

나는 자신있게 ‘그럴 것’이라고 단언 할 수 없다. 적어도 지금 우리나라 복지 정책 속 사정을 잘 알고 있다면 그런 거짓말을 나는 할 수 없다. 대표적인 경우가 올 2월 발생한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이다. 당뇨 등 지병을 앓던 두 딸과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어머니마저 팔 골절로 일할 수 없게 되자 이들 세모녀는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을 남긴후 자살했다. 우리나라 복지 현실을 고발하는 충격적 사건이었다.

그 교훈으로 정부는 올해 699억 원이었던 긴급 복지지원 예산을 44.9% 늘린 1013억 원으로 책정했다. 하지만 복지 전문가들은 송파 세 모녀 사건이 더는 없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비극은 한계가 있고, 따라서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죽지 말고 같이 살자’며 설득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한해 평균 자살자는 1만5000여 명이고 최대 30만 명이 자살을 시도한다고 분석되고 있다. 그리고 자살을 시도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는 질병과 생활고로 알려져 있다.
자살하려는 그들에게 우리는 어떤 희망을 줄 수 있을까. 사람의 목숨만 구한다고 전부 미담일까? 그들이 죽으려 한 진짜 이유는 그대로 둔 채 목숨만 구해 준다고 정말 그들은 고마워할까. 나는 그들이 죽으려한 진짜 이유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줘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래야 ‘진짜’ 구한 것이다. 복지 국가가 답인 이유다.

고상만 인권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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