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차다. 집에 있는 순돌이가 걱정이다. 좀 따뜻하게 해 줄 셈으로 담요도 깔아줘 보고 방풍 비닐도 쳐줘 봤지만 마치 반항이라도 하듯이 다 갈기갈기 찢어버린다. 진돗개의 습성이 그런 것인지 우리 순돌이만 그런 것인지, 마음을 알아주지 않으니 섭섭할 때도 있다. 늘 측은한 마음이 들어, 들고 날 적마다 마음이 아프다. 요즘처럼 추운 날이면 더 마음이 쓰인다. 다음 생에 또 태어날 양이면 사람으로 태어나서 좀 덜 춥고 덥게 살다가라고 빌어주고 있다. 살면서 참 다양한 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은행 직원, 우체국 직원 또 카페의 바리스타까지. 어떤 사람은 자기 일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에게 피곤함과 짜증을 전하고 어떤 이는 작은 감동을 주기도 한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는지 안다면 함부로 대하진 못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선 감동은 고사하고 편안한 기분이 들게 하는 사람도 만나기 쉽지 않을 걸 보면 말 못하는 동물에게는 오죽하겠나 하는 걱정이 든다.
우리는 감투만 쓰면 달라지는 사람들을 흔히 본다. 선거철마다 나타나 굽실거리며 표를 구하다 당선이 되고나면 180도로 태도가 돌변하는 사람은 너무 흔하다. 도대체 이런 태도를 갖게 되는 사람들의 심리가 궁금하다. 자기를 지지하고 인정해준 사람들에게 늘 겸손하고 다정하게, 도움이 되도록 애쓰는 것이 무릇 사람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그런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마디로 천박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천박한 권위를 가지고 힘자랑을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그 힘에 눌리는 사람들의 수도 점점 더 늘어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갑질’이라는 낯선 말이 어느덧 우리 사회 이곳저곳에서 쓰이고 있는 걸 보는 것 또한 마음 편치 않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을’의 위치에서 설움과 핍박을 당하며 사는지. 이번엔 아주 큰 건이 제대로 터졌다. 자기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을 노예만도 못한 존재로 부리다 그 횡포가 세상 밖으로 새나가는 바람에 언론에서 뭇매를 맞고 있다. 포털사이트마다 그 기사로 넘쳐나 거의 날마다 치도곤을 당하고 있는 듯 보인다. 정치가 워낙 어지러운데 ‘옳다구나!’ 싶은 언론들이 더 부추기는 측면도 있겠지만 곪은 곳이 터진 거라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사람이 사람을 존중하고, 자기를 위해 일하는 사람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 그것은 민주시민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그 덕목이 사라진 지 오래다. 로열패밀리가 넘쳐난다. 왕정이 없어지고 민주공화국이 된 지가 언젠데 어느새 이렇게나 많은 로열패밀리가 생겨났는지 코웃음이 난다. 언론에서도 공공연하게 로열패밀리를 얘기한다. 그러니 그들이 스스로 로열패밀리가 되어 노예를 부리려 드는 것이다. 언제부터 돈 많은 사람들이 로열패밀리가 되었는지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로열패밀리에게 기대할 수 있는 기품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졸부에게서나 풍기는 천박함이 있을 뿐이다. 기업의 사내보유금이 600조원에 육박한단다. 기업이 돈을 버는 사이 서민들은 빈민이 되었다. 돈이 돌지 않으니 서민들은 죽어날 수밖에 없다. 같이 사는 동물들도 겨울이 되면 그 추위에 혹시 상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게 인간 된 도리다. 하물며 자기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에게 인정을 베풀지는 못할망정 모욕을 주고 함부로 대해서야 될 일이겠는가. 사람은 죽는 날까지 좋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던 어느 학자의 말이 새삼스런 날이다.
인간은 존엄한 존재라고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성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모든 가치에 우선하는 돈이 인간의 존엄성을 앗아간 지 오래다. 구한말 외국인들이 보고 간 한국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은 요즘이다. 다가오는 미래가 진심으로  걱정 된다. 나의 이런 염려가 부디 기우로 끝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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