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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쪽같은 손자가 싫다는데… 담배 끊은 게 장수비결"고양사람들 일산 구산동에 사는 94세 김용규 옹
  • 박영선 기자
  • 승인 2014.12.31 16:50
  • 호수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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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 석중씨와 집 앞 텃밭에서 무청을 다듬고 있는 김용규 옹은 건강비결로 ‘금연’을 꼽았다.

다시 한 해가 시작되고 있다. 매년 이맘때면 고양시에 사는 90세 이상 어르신을 취재한다. 이번 주엔 박상언 송포비타민나무 대표(본보 981호)의 부친인 박충웅(구산2동 경로당)씨가 적극 추천한 어르신이다. 그 주인공은 2015년 을미년 청양띠 해에 94세가 되는 김용규 옹이다.

지금까지 취재한 90세 이상 어르신들 중 기억력이 가장 또렷한 김 옹은 “담배를 멀리 한 후 어디를 가든 금연을 권했는데,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더라”며 뿌듯해 했다.

김 옹이 금연전도사가 된 계기는 37년 전으로 거슬러 간다. 그 해 겨울, 방에서 담배를 피우는데 세 살이었던 큰손자가 연기가 맵다며 코를 막고서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밖으로 나갔다. 금쪽같이 귀한 손자를 위해 단번에 담배를 멀리 했다. 그랬더니 기억력과 정신이 맑아지며 몸이 가뿐해졌다.

원래 김 옹은 충남 공주 유구가 고향이다. 19살에 대동아전쟁(남양군도, 태국)에 강제 동원됐다. 화약을 폭발시켜 큰 나무를 무너뜨려서 동굴을 파는 노역을 2년간 했는데 위험한 순간을 수십 번 겪었다.

“그 당시를 생각하면 지금도 꿈만 같다”는 김 옹의 눈가에 이슬이 촉촉이 맺혔다.

한국으로 돌아올 때는 미군 비행기에 폭격을 당해 함께 떠났던 두 척은 침몰하고 김 옹이 타고 있던 한 척만 겨우 살아남았다. 그 무렵 기적처럼 함께 살아났던 동료가 소개시켜준 사촌동생이 김 옹의 아내가 됐다.
김 옹과 아내는 같은 동네에 살았지만, 어른들의 감시가 심해 결혼 전까지 멀리서만 얼굴을 보는 정도로 지냈다. 전쟁터에서 돌아와 2년 만에 결혼했는데, 요리를 잘하고 마음씨도 착한 아내와 금슬 좋게 9남매를 낳아 키웠다.

김 옹은 아내와 함께 충남 유구에 있는 마곡사에도 꾸준히 다니며 스님들과도 돈독한 관계를 맺었다. 김 옹은 “스님이 못 된 것이 후회스럽다”고 한다. 비록 스님이 되진 못했지만 스님처럼 살려고 무던히도 노력했다. 넉넉한 살림이 아니었는데도 배고픈 이들을 보면 밥을 꼭 챙겨먹여 보내곤 했다. 마곡사 절에 다니며 스님과 같이 밥 먹는 것을 인생의 기쁨으로 여기며 살았다. 김 옹은 1967년 무렵 고향에서 서울로 올라왔고, 1987년 고양시청 부근으로 옮겨왔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20살이던 큰아들을 이곳에서 연탄가스로 먼저 하늘나라로 보냈다. 1996년에는 시장에 다녀오던 아내가 현관문 앞에서 고혈압 후유증으로 숨이 차서 쓰러졌다. 곧바로 병원으로 옮겼지만 20일 만에 운명했고, 김 옹은 한동안 넋을 놓기도 했다.

2004년부터는 지금의 구산동에서 살면서, 집 앞 텃밭에서 채소들을 가꾸며 지낸다.

“초등학교를 못 나왔어도 반듯하게 살았다”는 김 옹의 손자와 증손은 무려 49명. 그야말로 다복한 가정으로, 자손들은 애니메이션 작가, 요양사, 어린이집 교사 등으로 활발하게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좀 더 젊게 보이려고 늘 모자를 쓴다는 김용규 옹은 “사위들까지 담배를 안 피워서 무척 기쁘다”며 “새해에는 모든 이들이 금연해 건강하길 바란다”는 덕담을 전했다.

 

박영선 기자  ysun6504@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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