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형·홍갑표 중남미문화원 원장 부부

새해 연재 다른 듯 닮은 우리 부부 이야기

다들 한 권짜리 사연을 품고 산다지요. 남과 남이 만나 하나가 돼 사는 부부에겐 얼마만큼의 사연이 있을까요. 때론 가장 가까우면서도 때론 한없이 멀게만 느껴지는, 그럼에도 더불어 삶의 고비를 헤쳐나가야할 부부의 이야기는 어느 이야기보다 깊고 절절할 겁니다.
 
2015년, 고양신문이 ‘다른 듯 닮은 우리 부부 이야기’를 새롭게 연재합니다. 잠시나마 아득해진 옛 감정, 투닥거려온 세월을 함께 꺼내 나누는 시간이 됐으면 합니다. <편집자 주>

고양시의 명소, 중남미문화원. 나무에 물이 올라 초록빛을 띠기 시작한 이후에 그곳에 가면 사다리에 올라 정원수를 손질하거나 꼬마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를 줍는 백발의 할아버지를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 작업복 차림의 이 분이 멕시코 대사로 은퇴한 이복형(84세) 원장이다. 또, 박물관을 구경하다보면 까만 케이프를 두르고 머리를 단아하게 빗어 넘긴 자그마한 할머니가 반가운 얼굴로 맞아준다. 눈빛에서 발사되는 열정이 젊은이 못잖은 이 분은 이 원장의 아내 홍갑표(82세) 이사장이다. 여든 넘은 나이에 손수 문화원 곳곳을 돌보고 있는 이복형, 홍갑표 부부는 문화원 사랑으로, 민간 외교활동으로 노년을 더욱 활기차게 살아가기로 유명한 분들이다.

피난지에서 피어난 사랑
1958년 결혼, 올해로 동고동락한 세월이 57년이다.

“육이오 때 대구 피난처에서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됐죠. 그때 남편은 스무 살, 나는 열여덟이었지.”
홍 이사장은 이 원장의 ‘순수한 열정과 정직함, 성실함’에 끌렸고, 이 원장은 홍 이사장의 ‘꿋꿋하고 당찬 자세와 흐트러짐 없는 외모’에 매료되었다. 56년, 청년 이복형은 통역장교로 2년간 미국으로 떠났다. 두 사람의 연애는 잠시 공백기를 거치지만 사랑은 태평양을 건너 더욱 커져만 갔다. 이 원장이 한국으로 돌아와서 판문점에서 근무하던 시절, 드디어 청혼을 했고 두 사람은 6년간의 연애를 마치고 부부가 되었다. 새색시 홍갑표는 사업수완을 발휘해 살림살이를 도맡아하며 남편을 성공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 원장은 ‘빈털터리 구가(舊家)의 맏며느리로 시집와 혼자되신 시할머니, 시어머니, 시누이 밑에서 빈 칸에 셋방을 들여 수입을 창출하고 남편의 유학길을 터주었으며 40년 공직생활 동안 내조와 두 자녀 양육 뒷받침에 정성을 쏟았다’고 아내의 자서전 『지금도 꿈을 꾼다, 태양의 열정으로』에 쓰고 있다.

외교관도 고달픈 가난했던 그 시절
이복형 원장이 외교관으로 활동하던 1960~80년대는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이 대립하던 시기였다. 이 원장의

임무는 중남미에서 한국의 입지를 넓히고 북한 진출을 차단하는 것이었다.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던 중남미 국가를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UN에서 한국에 유리한 안건이 통과될 수 있던 상황이었다. 명색이 외교관이지 가난한 나라의 외교관으로서 체재비마저도 부족해 허름한 연립주택에서 살면서도 매일같이 현지 명사들을 초청해 연회를 열고 한국을 알렸다.

“가난한 나라 외교관이 무슨 돈이 있어서 요리사를 두겠어요. 파티준비, 음식장만 모두 나 혼자 땀을 뻘뻘 흘려가며 해결했던 거지.”

홍 이사장은 매번 손님 식사를 준비하고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한국 문화와 전통을 알리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식탁을 꾸밀 꽃을 살 돈이 없어서 공원에 핀 야생화를 꺾어다 장식을 하는 기지를 발휘하기도 했다.

 

“이제 나의 춤을 함께 춥시다”
67년 멕시코 1등 서기관으로 중남미와 인연을 맺은 이 원장은 코스타리카, 도미니카, 아르헨티나, 멕시코 대사를 거쳐 93년 은퇴했다. 남편이 은퇴하자 부인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지난 30여 년간 당신의 춤을 함께 췄으니, 여생은 나의 춤을 함께 춥시다.”

이렇게 해서 중남미에서 모은 미술품과 공예품으로 고양동에중남미문화원을 세우게 된다. 고양향교 옆의 자그마한 박물관으로 시작했던 문화원은 미술관(96년), 조각공원(2001년), 종교 전시관(2011년) 등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으로 발전했다. 내전의 혼란 속에서 무심하게 판매되던 중남미 예술품들이 문화적 안목을 지닌 홍 이사장의 눈에 띄어 하나둘 그녀의 손에 들어왔고 그렇게 모은 예술품과 유물은 개인의 소유물이 아닌, 재단법인 중남미문화원에서 공공의 재산으로 다시 태어났다. 여기에 중남미 10여개국에서 기증받은 다양한 조각품들이 더해졌다. 마야·아즈텍·잉카 고대문명과 스페인 식민시대 유물 3000여 점, 각종 중남미 역사·문화 관련 자료가 집대성된 중남미문화원은 아시아 유일의 중남미박물관으로서 설립한 지 20년 만에 관광명소로, 민간외교기관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2014년 연말에는 이복형 원장이 경기도박물관협회가 선정한 ‘2014 자랑스런 박물관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홍갑표 이사장은 2013년 『지금도 꿈을 꾼다, 태양의 열정으로』라는 자서전을 통해 부부의 삶과 문화원 설립에서 문화원 자산을 사회에 환원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기록으로 남겼다. 홍 이사장은 이 책을 통해 젊은 사람들에게 꿈을 가지고 끝까지 도전한다면 언젠가 꼭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은퇴 후에는 민간외교관으로
이복형 원장은 “오럴 히스토리에 중남미 국가들과의 외교사를 싣게 되었다”며 “외교관으로 평생을 일했던 나에게는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한다. 오럴 히스토리 총서 ‘한국 외교와 외교관’은 외교부 전직 대사들의 구술을 담은 시리즈물로서 국립외교원 외교사연구센터가 발간하는 책이다. 외교부는 이 책을 통해 비문서 외교사를 정리하고 신규 외교관들의 지침서로 쓸 계획이라고 한다. 은퇴 이후에도 이 원장의 외교적 행보는 끊임이 없다. 고양국제꽃박람회 초기 자문위원장을 맡아 한국에 와 있는 외교관들의 참여를 이끌어냈고 그 공로로 2005년 문화훈장을 받았다. 연구소 서재에는 9개국에서 받은 12개의 훈장과 상장들이 한쪽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지금도 매일 인터넷으로 국제 뉴스를 접하고 관련부서에 의견서를 보내는 원로 외교관으로서의 역할을 잊지 않는다.

여행과 전시회 준비에 한껏 부푼 요즘
이복형, 홍갑표 부부는 요즘 여행계획에 기대가 가득하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매년 중남미지역을 방문해

▲ 이복형 홍갑표 부부는 멕시코 여행 계획에 한껏 들떠 있다. 이 원장이 손수 운전해 아내가 가고픈 곳을 모두 들러올 계획이다.

문화재와 자료를 수집하고, 기념품점에서 판매할 품목을 직접 구입해왔었는데 최근 몇 해 동안은 여러 상황이 좋지 못해서 다녀오지 못했단다. 그런데 새해를 맞아 한 달간 멕시코 여행을 준비 중이다.

“멕시코는 대사로 있던 곳이라 이곳저곳 많이 알죠. 직접 운전을 해서 아내가 가고 싶다는 곳을 다녀올 예정이에요. 운전을 위해 지금 컨디션 관리를 하고 있어요.”

이 원장의 컨디션 관리 방법이 궁금하다. 뒷산이라도 오르시나?

“매일 아침 8시부터 10시까지 눈도 치우고 낙엽도 쓸고 개밥도 주고 와요.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하면서요.” 소년처럼 상기된 표정으로 여행계획을 이야기하는 이 원장의 모습을 보며 모처럼 떠나는 부부만의 여행에 많이 설레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이 부부를 들뜨게 하는 또 한 가지는 특별기획전 준비작업이다. 4~5월에 열릴 특별기획전시에서는 ‘중남미 전통 의상과 직물’을 주제로 중남미 원주민들의 전통의상을 전시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중남미 18개국 대사관에 요청해 곧 각 나라의 의상이 도착할 예정이다. 독특하고 뜻있는 전시를 하려 미술관 지하를 리모델링하고 전시회 기획을 위해 아이디어를 모으는 등 쉴 틈이 없다.

“대사님이 내 뜻대로 해주니까 내가 신나서 문화원 관리를 하는 거죠.”(홍갑표 이사장)
“검소한 삶을 살고 있지만 보람은 아주 커요. 터를 마련하고 설계하고 운영한 아내의 공이죠.”(이복형 원장)

이복형 홍갑표 부부가 주는 삶의 지혜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같은 꿈을 꾸고, 같은 곳을 향해 갈 때 두 사람 사이에는 그 어느 삿된 것도 끼어들 틈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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