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은 간호사의 건강읽기

▲ 이성은 관동대 간호학과 교수

얼마 전 신문에서 혼자 사시는 할머니께서 동사무소를 찾아와 아껴 모은 500만원을 독거노인을 위해 써달라고 기탁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마음이 훈훈해지는 내용이었다. 그리 넉넉하지는 않지만 기부를 할 수 있다는 마음은 자신과 가족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을 넘어서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려는 것이 진정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사를 읽은 바로 그날 인터넷뉴스에서 다른 한 어르신의 기부금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혼자 사시는 할아버지가 도움이 필요한 노인을 위해 써 달라는 유서와 돈 1000만원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대조적인 두 어르신 삶의 모습에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이뤄야 하는 삶의 욕구가 있다. 심리학자 A. Maslow가 정리한 인간의 욕구 단계는 의식주 충족의 욕구에서 시작해 안전과 사랑 및 성취의 욕구를 거쳐 인간이 마지막으로 이뤄야 하는 욕구는 자아통합의 욕구이다. 자아통합단계란 진정 자신 삶의 의미와 존재감을 아는 단계인 것이다.
영유아기와 학령기, 청소년기, 청년기가 무엇을 쌓아가야 하는 시기이라면 노년기는 자신을 비우는 시기이다. 자신과 가족의 범주를 넘어 진정한 자신 삶의 의미를 찾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기가 노년기이며 재물과 명예와 권력을 많이 쌓는다고 행복해 질 수 없는 시기다. 체력관리를 아무리 해도 체력은 약해지고 외모를 꾸미려고 할수록 자신의 나이 먹음을 느끼게 되는 시기다. 외적으로 채우려고 할수록 내면세계가 비어있음을 느끼게 되는 시기인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넓히고 이웃과 자연을 포용하고 자신과 통합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고 자신의 귀중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조선말과 일본강점기 그리고 이어진 6.25전쟁을 겪으면서 절대적 부족함을 체험하였기에 채우는 것이 우리 삶의 전부가 되었다. 경제개발을 통해 짧은 기간 동안에 큰 성장을 이룬 우리는 무언가를 쌓아 가는 데 집중한 결과 나누고 비우는 철학을 잃어버렸다. 채우는 것 자체에 목적을 두다 보면 왜 채우는지를 잊게 되고 채우기 자체가 목표가 되면 채우는 삶 자체가 짐이 된다. 채우는 것이 짐이 된다는 것은 뒤집어 말하면 비워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비우는 것은 또 다른 탄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독수리가 부리를 고통스럽게 떼어내야 다른 삶이 시작되듯. 노년에 자신의 삶을 직면하고 자신을 비우는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은 아니다.  그러나 비우는 과정이 없이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는 것이 노년의 삶이다. 또한 노년이 되어 ‘자 오늘부터 나는 비우는 삶을 살 것이다’라고 시작할 수 없다. 젊어서부터 비우는 삶을 준비할 때 노년에 비우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복지국가를 추구하면서 노년기를 위한 여러 정책을 실시한다. 그러나 정책의 대부분이 의식주 중심이고 외적인 성취를 위한 프로그램이지 진정 노년기 삶의 의미를 깨닫는데 도움이 되는 정책이 드물다. 서울 부유한 동네의 노인복지회관에서 성형 수술을 해 얼굴에 주름이 잘 안 잡히는 노인이 열심히 운동을 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노인복지정책의 전부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자신을 비워가는 과정이 고통스럽지만 진정한 삶의 통합을 이루기 위해 진정 행복한 노년이 되기 위해 필수적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는 국가정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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