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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록수 같은 인연으로 48년 살아온 부부<다른 듯 닮은 우리 부부 이야기> 전 고양향교 전교 이세준·이선호 부부
  • 이옥석 시민기자
  • 승인 2015.01.07 14:57
  • 호수 1206
  • 댓글 0

새해 연재  다른 듯 닮은 우리 부부 이야기

전 고양향교 전교 이세준·이선호 부부 
결혼 전 어머니 회갑상에 함께 잔 올려
알고보니 참으로 희한했던 프러포즈

이세준 전 고양향교 전교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자 “맹자께서 천하에 존귀함에 이르는 달존(達尊)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하셨는데 작(爵, 벼슬)과 연치(年齒, 나이)와 덕(德)이 그것”이라며 “세 가지 중 어느 것 하나에도 이르지 못한 사람이 무슨 인터뷰를 하느냐”고 한사코 마다했다. 결국 기사 마감을 해야 하는 사정을 이야기하며 어렵게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이렇게 인터뷰에 응해주신 이세준님과 이선호님께 감사드린다.

 

   
▲ 이세준 전 전교의 회갑잔치 때.
   
▲ 부부의 신혼시절 모습.

 


 

 

 

 

 

 

 

1960년 동국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한 이세준 전 고양향교 전교(이하 전 전교)는 그때부터 지역 4-H 활동을 했고, 졸업 후에는 직장에 다니면서 4-H 지도자가 됐다. 농촌의 경제적·문화적 근대화를 위해 활동하는 것이 젊은이들의 큰 사명이었다.


당시 가을이면 군, 도, 중앙 단위로 4-H 경진대회가 열렸다. “수예(手藝)를 잘하는 여성이 있어서 그 분이 수놓은 손수건 등을 얻어다 경진대회에 출품을 하면서 서로 아는 사이가 되었기에 그 여성에게 어머님 회갑날 나하고 같이 잔을 올려주기를 부탁하였다”고 한다. 참으로 희한한 프러포즈를 한 것이다. 결국 “남의 부모님 회갑상에 어떻게 잔을 올리느냐”며 양가 어른들이 만나 인사를 나누고 간단히 결혼 약속을 하기에 이르렀다.

희한한 프러포즈 덕분에 모친 회갑을 잘 치르고 서너달 후인 1968년 2월 26일 둘은 종로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로는 보기 드물게 화전과 서울역을 오가는 시내버스 4대를 대절했다.

부모 곁에서 곱게 자라 동명여고에 다니며 체육부장도 하고, 전국체전에 서울대표 허들선수로 출전해 은메달도 따고, 교회 다니며 학생부 회장도 했던 이선호씨가 전기도 안들어오고 수도시설도 없는 시골마을 은못이의 한산이씨 22대 종부가 되었다.

“얼굴이 얽었는데 내 눈에는 그런 흠이 안보이고 후리후리하게 큰 키도 멋있고, 근사한 필체로 써보낸  편지도 구구절절 품위가 느껴지며, 이 사람은 정말 속 깊은 사람이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약혼식을 하고나서부터 신기한 꿈을 꿨어요. 꿈에 내가 말을 타고 한 번도 와보지 않은 이 집에 온 거예요. 날 태우고 신나게 달려온 말이 집 마당에 도착하자 신이 났는지 앞발을 높이 치켜들며 큰소리로 울더니, 이번에는 산으로 내달리더라고요. 지금 생각하면 조상님 산소가 있던 산을 한 바퀴 돈 것 같아요.” 꿈은 계속 이어졌다. “또 한 번은 커다란 기와집에 들어갔는데 온통 캄캄해서 아무것도 보이질 않아서 내가 방마다 불을 밝히는 꿈도 꿨어요.” 신기한 꿈 때문이었을까, 친정 부모님도 시골 종갓집으로 시집가는 것이 딸의 운명이겠거니 하고 받아들였다고 한다.

인생을 먼저 사신 부모님의 예감이 틀릴 리가 없었다. 낭만적인 시골생활을 꿈꾼 이선호씨가 맞닥뜨린 시골생활은 모진 눈물의 세월이었다.

전기도 수도도 없는 시골에서 1년에 12번 넘는 제사와 시제, 각종 경조사를 감당하는 일은 서울 새댁에게 가혹한 일이었다. 그녀는 “밤이면 맏딸을 업고 동둑에 올라 서울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울었다”고 한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시어머니 몰래 기저귀를 개주고, 애들을 업어 재워주고 동네에서 제일 먼저 세탁기 사다주는 든든한 남편이 있어서 어려움을 견뎌낼 수 있었다.

이세준 전 전교는 ‘시집 온 이래 그 많은 제사를 지내며 조상님들 섬기는 일을 한 번도 소홀히 한 적이 없었고, 늘 웃는 얼굴로 부모님을 섬기고 친척과 이웃을 도우며, 현숙한 부인 역할도 톡톡히 했던 아내가 오랜 세월 몸을 아끼지 않고 일을 해서인지 늘 허리가 아파 고생을 하고 있어 미안하다’며 그동안의 일을 담담히 기록해 『기다 걷다 구부러지니 생각나네…』라는 제목의 책을 한 권 써서 칠순을 맞아 잔치를 하는 아내에게 헌정했다. 이제까지 표현하지 못했던 고마움을 대신하는 마음이었으리라. 

 

   
▲ 1968년 종로예식장에서의 결혼식 모습. "어머님 회갑상에 함께 잔을 올리자"는 게 남편의 프로포즈였다.

이선호씨는 지난해 10월에 있었던 자신의 칠순잔치 때 그동안 운동삼아 배운 훌라댄스를 친구들과 선보이며 잔치에 참석한 이들과 손자손녀들 그리고 47년을 함께해온 남편의 마음을 흐뭇하게 했다.

“우리 안사람은 그렇게 바쁜 일상 속에서도 대한민국 전통미술대전에서 특선과 입선을 했고, 분재를 배워 자격증도 땄고, 요즈음에는 서도를 배운다며 새벽 4시부터 붓을 든다”고 말하는 이세준 전 전교. 이제까지 한 번도 잘했다고 칭찬한 적이 없다면서도 아내에 대한 은근한 자랑이 담긴 말을 건넸다.

그녀가 분재 자격증을 땄을 때, 국전에서 상을 받았을 때, 그리고 또 뭔가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마다 아들과 며느리, 딸 사위 손자 손녀 온가족을 불러 저녁을 사주며 엄마이고 할머니이고 시어머니며 장모인 아내를 추켜 준다. 그녀가 ‘이 사람은 정말 속 깊은 사람이다’라고 생각했던 그 모습 그대로다.

48년째 동고동락하며 아웅다웅 알콩달콩 살아가는 이세준 전 전교와 이선호씨. 1남 3녀를 모두 출가시키고 70이 넘은 이제야 “한 달에 한 번씩 극장에서 영화보겠다”고 했던 결혼 전 약속을 지키고 있다. 얼마 전 개봉한 ‘님아 저 강을 건너지 마오’를 보며 그렇게 가슴이 아플 수 없었다는 노년의 부부. 함께했던 오랜 세월 덕분에 이제는 달콤하고 다정한 아주 특별한 벗이 된 부부. 남은 시간은 오로지 두 사람만을 위한, 황금 같은 노년을 누려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다.

 

 


 

이옥석 시민기자  los10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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