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연재 다른 듯 닮은 우리 부부 이야기 - 김수정·김정화 부부

대학서 경영학 공부하며 첫 만남
남편, 9년간 진밭두레 총무 맡아
아내, 한국은행 다니던 워킹걸 

▲ ▲ 남편 김수정씨는 토지공사 퇴직 후 2002년에 고향으로 내려왔고, 2003년 식사동에서 공인중개업을 시작했다. 이 때가 부부의 인생 터닝포인트였다.

1982년 10월 24일, UN데이가 외유내강한 김수정씨와 외강내유한 김정화씨의 결혼기념일이다. 한국토지공사에 다니던 신랑 김수정씨와 한국은행 다니던 신부 김정화씨. 올해로 34년째 동고동락한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며 선후배로 만났고, 총동문회 임원활동을 하며 3년 연애하고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내 그릇에 음식을 덜어 주길래 좋아한다고 착각했다”는 김수정씨. “전골을 먹는데 어떻게 내 것만 덜어먹느냐”고 말하는 김정화씨. 누가 먼저 좋아했는지, 앞으로도 영원히 풀지 못할 숙제다.

착각이었다고 말하지만 인연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은 『법망경』에 칠천겁의 인연이 쌓여 부부가 된다고 했다. 일 겁은 천년에 한 방울 떨어지는 물방울로 집채 만한 바위를 뚫는 시간이라고도 하고, 백년에 한 번씩 내려오는 선녀의 치맛자락에 스쳐서 바위가 닳는 시간이라고도 한다. 부부의 인연을 어떻게 더 강조할 수 있을까.

친정아버지가 원산에서 홀로 내려온 분이라 가족이 단촐했다는 김정화씨는 성석동에 530여 년 살아온 순천김씨 집안의 장남 김수정씨와 혼인하면서 “아버님은 6남매시고, 어머님은 9남매이셔서 생신 때나 명절이면 정말 많은 가족들이 모이는데 그게 그렇게 좋았다”고 한다. 게다가 유난스럽게 가족과 친지의 우애가 좋아서 모임도 자주 가졌다.

돌잔치 때 친정어머님이 오셨다가 가족모임 규모에 놀라실 정도로 큰살림을 해야 했다. “좋기는 한데 현실은 힘들었죠. 문화적 차이도 꽤 컸고… 그래도 살아가는 데는 어떤 법칙이 있는 건 아니더라구요.” 길 없는 길을 지혜롭게 찾아가며 한국은행 다니던 워킹걸 김정화씨는 큰 집 살림을 시작했다. 친화력도 좋고 리더십도 있어서인지 시누이한테 “오빠 보러 오는 게 아니라 언니 보러 온다”는 말을 들을 정도가 됐다. 

외유내강의 남편과 외강내유의 아내가 알콩달콩 살며 아이들 크는 재미를 볼 즈음인 1992년 한중수교가 이루어졌고, 1993년 김수정씨가 중국천진으로 발령을 받았다. 사내 중국어 연수 성적이 우수했고 업무능력을 인정받고 있어서 중국으로 안가고 싶어도 소용이 없었다. 당시 중국 치안이 안정적이지 않아 가족들이 함께 가지 못했다. “오래 떨어져서 지낸 건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며, “남편의 부재가 그렇게 크게 느껴질 수 없었다”고 한다.

그 후 회사의 배려로 남편이 있는 곳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함께 살게 되었다. 김정화씨는 “우리 남편한테는 제가 꼭 필요해요!”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당시 천진은 한창 개발을 하고 있던 곳이라서 마땅한 한식당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본사에서 오는 분들이 계시거나 행사 등이 있을 때 회사직원들 식사 대접도 했고, 직원 자녀들이 다니던 학교에 매주 김치를 담그고 급식 만드는 봉사를 수시로 했다. 명절이면 푸짐하게 음식을 해서도 나눠 먹기도 하고 현지에 나와 있는 직원 가족들 김장을 도와주고 고추장이나 새우젓 담그는 것을 알려주기도 했다. “친인척들께서 중국에 오시면 일순위로 찾는 사람이 됐다”며 한 마디로 김정화씨는 김수정씨에게 “내조의 여왕이었다”고 한다. 선비집안 출신답게 원칙주의자인 남편은 맡은 일에 열과 성을 다하는 충실한 사람이었지만 융통성이나 타협이라는 단어가 없는, 강한 부드러움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런 남편이었기에 김정화씨는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 ▲ 34년째 함께 살아오며 쌓인 섭섭한 것을 이야기하다가도 금방 남편은 아내 자랑, 아내는 남편 자랑을 하는 남편 김수정, 아내 김정화 부부.
토지공사 퇴직 후 2002년에 고향으로 내려왔고, 2003년 식사동에서 공인중개업을 시작했다. 이 때가 김수정씨 부부의 인생 터닝포인트 였으리라. 개인 사업을 시작했고, 아울러 고향에 내려오고부터 마을일도 열심히 했다. 지난해까지 진밭두레 총무 일을 9년 동안 보았고, 부동산 친목회 회장도 하고, 토지공사 쌍수회 회장도 한다.

올해부터는 성석동 진밭마을의 통장이 되어 또 하나의 봉사를 더하게 되었다. 김수정씨는 올해가 환갑이라며 일을 내려놔야 할 시기에 일을 더 맡게 됐다며 보다 젊은 분이 나서서 봉사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아내가 회장으로 있는 고양풍산 산악회 산악대장까지도 한다.

김정화씨는 풍물의 ‘풍’자도 몰랐고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땀 흘리며 힘들게 산에는 왜 올라가냐고 했던 아내였다. 그런 아내가 진밭두레에 사람이 부족하다는 남편의 말을 듣고는 인원수라도 채워야겠다며 풍물가락을 배우기 시작했고, 지역 산악회에 가입했다가 회장까지 맡게 되었고 산악대장 남편의 외조를 받고 있다. “원칙적이고 진실하고 사심도 없고 숨기는 것도 없는 그런 남편, 가정과 마을을 위해 좋은 일 하려고 늘 애쓰는 남편을 돕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는 김정화씨. 내조의 여왕답다.

“나도 당신이 회장하고 있는 고양풍산 산악회 산악대장하면서 등반할 산을 고르고 안정적으로 산행할 수 있도록 일정 조정하고… 하여간 나도 당신 외조 많이 했다”고 큰소리 치는 김수정씨. 웃음 가득한 얼굴로 “당신은 나의 관운장이고 장비야”라고 말한다.

“부부는 함께 섞여서 닮아가고 갈라지지 않는 물과 같다. 부부는 평생을 같이 가는 동료다”라고 부부는 말한다. 34년째 함께 살아오며 쌓인 섭섭한 것을 이야기하다가도 금방 남편은 아내 자랑, 아내는 남편 자랑이다. 연인인 듯 친구인 듯, 아직도 봄 향기가 두 사람 사이에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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