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겨울은 그리 춥지 않게 지나왔던 듯하다. 수돗물이 얼어붙어 고생한 기억이 없고 난방을 하지 않는 공간이라도 별로 춥다는 느낌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팍팍한 서민들 입장에서는 춥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농사를 주로 짓던 조상님들은 참으로 지혜롭고 슬기로운 분들이었다.
24절기는 지금 사용하고 있는 태양력이 들어오기 전 주로 사용 되던 음력을 보완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일찍이 날씨를 관찰하고 계절을 관찰하여 일정한 주기가 있음을 파악한 것이다. 농경사회에 농사짓기에 꼭 필요한 절기를 만든 것이다. 그 첫 번째 절기가 입춘(立春)이다. 양력으로는 2월 4일 입춘이 들지만 5일에 드는 경우도 가끔 있다.
오래 전부터 입춘에는 집 대문에 입춘방(立春榜), 입춘축(立春祝)을 써서 붙이는 행사가 있었다. 지금도 아파트나 단독에 살면서도 전통문화를 지키는 분들이 있지만 극히 소수이고 아파트 현관문에 붙이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극히 드문 경우이고 대다수는 서양문화에 더 열성적인 모습을 보면서 아쉬움이 남는다.
입춘방이나, 입춘축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 주로 한자로 글을 써서 대문이나 아파트에 붙이는데 예전에는 글씨를 쓸 줄 아는 분들이 써서 나눠주기도 했다. 그 내용들을 보면 용(龍), 호(虎)자를 마름모꼴 종이에 써서 대문에 붙이기도 했고,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이란 글을 써서 대문에 붙이기도 했다. 그 외에도 우순풍조(雨順風調), 시화년풍(時和年豊), 개문만복래(開門萬福來), 소지황금출(掃地黃金出) 등 이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옛날 대궐에서도 입춘날에 다양한 행사를 열었는데 글을 짓게 하여 좋은 글을 뽑아서 대궐기둥이 붙이기도 하였고 관상감에서는 주사로 벽사문을 써서 대궐안으로 올리면 대궐 문설주에 붙이는데 이것을 입춘부(立春符)라 한다. 전통을 지켜가고 있는 각 사찰에서는 입춘날에 입춘불공을 하고 입춘부적과 입춘방을 나눠주고 각종의식을 행한다. 요즘은 자동차 부적 등 새로운 풍속도가 생겨나고 있다.
이런 것들에 너무 의존하거나 고가의 비용을 요구하는 일부의 행태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는 저녁 한 끼 비용으로 일 년 동안 기분이 좋다면 심하게 비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런 의식들이 미신이냐 아니냐는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재앙과 재난 앞에 나약한 것이 인간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가족의 건강과 가정 내에 다복한 삶을 꿈꾸는 옛 어머니들의 간절한 마음도 여기에 담겨 있다. 사회적으로 유명한 분들도 마음이 약할 때가 생기면 이런 것에 집착하거나 매달리는 경우를 종종 본다.
여러 가지로 발생하는 일에 대한 통계를 살펴봐도 상황이 좋지 않을 때 불행한 일들이 더 많이 일어난다. 요즘은 위험한 산업현장일수록 근로자들의 생체리듬을 파악하여 위험한 날은 피하게 하는 등 산업 현장에도 적용 되고 있는 실정이다. 아직도 추위가 남아있다. 꽃샘추위도 있다. 숱한 추위와 어려움을 견뎌야 봄을 맞이하듯이 시련과 고통을 극복해 내지 못하면 따뜻한 봄꽃을 볼 수가 없다. 눈 속에 피어나는 설중매 처럼 힘들지만 추위를 견디며 봄을 기다려봐야 할 듯하다.
보산 고양시 조계종 주지협의회 회장. 길상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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