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남부시장, 광주 대인시장 방문

지난달 30일 광주 대인시장의 밤풍경. 이날은 한달에 한번 열린다는 야시장 '별장'이 펼쳐졌다. 방문객의 대다수는 젊은 층이었다.
전주 남부시장 청년몰
청년 참여로 시장 활성화
광주 대인 예술야시장
예술접목 통해 방문객 유입

생각하면 아늑하면서도 아련한 곳이 전통시장이다. 질펀한 인심과 추억이 깃들어 있는 곳. 한때 지역경제의 중심추를 담당했던 공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골목상권에까지 진출한 대기업, 인터넷쇼핑몰 등과의 경쟁에 밀려 상인들의 살림살이는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 이는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의 눈부신 성장과도 대조를 이룬다. 
쇠락한 전통시장은 다시 부활할 수 있을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지역 전통시장 상인들이 지난달 30일 전주 남부시장과 광주 대인시장을 방문했다. 전통시장 성공사례를 배우기 위해 마련된 이날 견학에는 원당·일산·능곡 전통시장 상인회 관계자들과 지역경제과 공무원들, 시의회 연구모임인 사회적경제연구회 소속 강주내·고은정·김효금·장재환(이상 새정치민주연합)·박시동(정의당)의원 등이 함께 했다.

회춘한 전통시장. 비결은 ‘레알 뉴타운’
고양에서 차로 4시간 남짓 거리. 전주 한옥마을에서 관광을 마친 이들이 다음 코스로 꼭 찾는 곳이 있다.

바로 500년 넘는 역사를 지닌, 호남 일대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전주 남부시장이다. 예전부터 유명한 시장이지만 최근 새롭게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이곳 시장건물 2층에 마련된 평균나이 스물아홉 살 점주들이 모여 있는 청년몰 때문. 쇼핑도 하고 밥도 먹고 문화체험도 할 수 있는 신개념 복합쇼핑몰인 이곳은 명칭 또한 예사롭지 않다. 이름하여 ‘레알 뉴타운’.

전주 남부시장 2층 청년몰 입구 간판

‘적당히 벌고 아주 잘 살자.’

정겨운 시장골목을 지나 2층 계단에 오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문구다. 이곳에는 노천카페부터 칵테일바, 각종 액세서리 가게, 보드게임방까지 일반 전통시장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하고 참신한 업종들이 자리해있다. 2011년 2개 점포로 시작해 현재 입점해 있는 가게 수는 총 33개. 2011년 문전성시(문화를 통한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 대상지로 선정된 뒤 ‘청년 장사꾼 프로젝트’를 진행한 지 4년 만에 이뤄낸 성과다.

변화는 간절함에서 출발한다고 했던가. 5900평 규모, 400개의 점포가 자리한 이곳 남부시장도 한때 대형마트의 공세에 어려움을 겪던 적이 있었다. 돌파구를 찾기 위해 주목한 곳은 장사가 안돼 덩그러니 비어있던 2층 물류창고. 문화체육관광부와 전주시, 사회적기업 ‘이음’, 남부시장번영회가 머리를 맞댄 결과 이곳을 젊은 장사꾼들에게 공짜(나 다름없는 값으)로 내주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침체된 전통시장에 청년층을 끌어들여 새롭게 활성화시키기 위함이었다.  

참여와 참신함이 남부시장의 성공비결
시작부터 순탄치만은 않았다. 본래 폐쇄적인 전통시장의 특성 탓일까. 상인들도 손님들도 청년들의 도전에 마냥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사업을 주도했던 이승미 청년몰 매니저는 “처음에는 손님보다 언론이나 정치인이 더 많이 올 정도로 장사가 정말 안됐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지금은 3개 점포를 모집하는데 80팀이 참여할 정도로 성공사례가 됐다.

남부시장 청년몰에는 다양하고 특색있는 가게들이 모여있다.
“우선 상인분들과 신뢰관계를 만들기 위해 1년 가까이 토대구축 사업을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시장 활성화를 위해 축제도 열고 현수막도 다양하게 맞추면서 홍보활동을 적극적으로 했죠. 찾는 분들이 지루해 하지 않도록 다양하고 참신한 청년문화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어요.”

남부시장의 대표 명물이 된 야시장 또한 이러한 고민 끝에 탄생한 콘텐츠다. 직접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장터가 생기자 입소문을 타고 시장을 찾는 방문객이 하나 둘 늘기 시작했다. 야시장이 생긴 뒤 남부시장을 찾는 인원은 하루 평균 6000~1만2000명. 특히 젊은 층의 방문 수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매출 또한 과거에 비해 15~20% 정도 상승했다.

“보통 36개 매대가 들어오는데 최대한 품목이 겹치지 않고 시장 컨셉트에 맞는 아이템을 선정하려고 노력해요. 품질과 가격도 지속적으로 관리했던 게 성공비결이 아닌가 싶어요. 일부 매대는 다문화, 취약계층, 시니어 쪽에도 배분하고 있어요.”

대인 남부시장의 성공사례 발표를 경청하고 있는 상인회 회원들과 시의원들.

하현수 남부시장번영회장은 청년몰이 시작될 당시부터 취지에 공감하고 적극 후원해왔다. 청년몰과 야시장이 유명해지고 남부시장 전체가 생기를 찾고 있지만 모든 상인들이 긍정적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정작 매출상승에는 영향이 없다며 볼멘소리를 내는 상인들, 방문객의 증가로 불편함만 늘었다는 상인들, 이제 청년점포들에게도 똑같은 임대료를 적용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많았다. 하지만 하현수 회장은 “아직은 서로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방문객 수가 늘고 특히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것만으로도 청년몰이 시장에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일단 찾는 사람이 늘었으면 나머지 매출부분은 전적으로 상인들의 노력에 달린 거죠. 임대료 이야기가 나올 때도 저는 항상 말해요. 대를 이을 장사꾼들이 생겼으니 우리가 키워줘야 한다고 말이죠.”

전통시장과 현대예술의 색다른 만남
전주의 명물 콩나물국밥으로 점심끼니를 마친 일행은 2시간 정도 떨어진 광주 대인시장으로 이동했다. 광주 구도심에 있는 대인시장은 59년 공설시장을 개장된 이래 한동안 지역상권의 중심역할을 담당했던 곳이다. 하지만 이곳도 한때는 상권이 몰락직전까지 이르렀던 적이 있었다. 홍정희 대인시장번영회장은 “손님 발길이 끊기다보니 2007년에는 아예 20%의 상가만 남아있기도 했었다”고 말한다.

텅빈 시장에 반전의 계기가 찾아온 것은 예술인들이 모여들면서부터다. 전통시장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을 느낀 예술가들이 시장 내 설치미술을 선보이고 곳곳에 벽화를 그리면서 시장은 문화·예술공간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대인시장의 지역 전통을 살리고 싶어 하는 예술가들과 상인들의 만남. 여기에 2011년 대인시장에서 개최된 광주비엔날레가 소위 ‘대박’을 치면서 시장상권도 급격히 살아나기 시작했다. 현대미술과 전통시장의 결합이 호평을 받자 참여 작가 중 5명은 아예 시장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상인들과 동거를 시작했다. 

떠나갔던 상인들이 다시 모여들면서 대인시장의 점포는 다시 400개로 증가했다. 이중 60곳은 청년들과 예술가들의 공간이다. 홍정희 회장은 “숫자상으로는 20%의 비중을 차지하지만 시장에 대한 영향력은 상인회와 예술가 집단이 반반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수년간의 역사를 거치며 상인들이 예술적 가치를 깨닫고 인정하기 시작한 것.

대인시장 곳곳에서는  참신한 내용의 벽화들을 볼 수 있다.
현재 대인시장에는 크게 두 가지 지원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중소기업청 등이 주최하는 대인시장 문화관광형시장육성사업 ‘대인스토리’와 문화체육관광부, 광주시가 주관하는 아시아문화예술활성화거점프로그램 대인예술시장 ‘별장프로젝트’. 이 가운데 야시장으로 펼쳐지는 별장프로젝트는 약 250개 팀이 신청해 그 가운데 100개 팀이 참여한다. 대다수 셀러들은 청년상인과 예술인. 찾는 방문객의 80%도 20~30대 젊은 층이다. 그야말로 전통시장의 풍경이 천지개벽한 셈이다.

대인시장 안쪽에 위치한 웰컴센터. 청년상인들의 핵심 거점지 역할을 하고 있다.
별장프로젝트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정삼조 총감독은 “청년들과 잘 융합되는 시장을 만들기 위해 갤러리, 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며 “덕분에 야시장이 열릴 때마다 1만 명 정도의 청년들이 이곳에 찾아온다”고 설명했다. 기존상인들 또한 “청년들이 시장을 찾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생기고 장사의욕이 넘쳐난다”며 즐거워하고 있다.

홍대거리 방불케 하는 대인야시장
방문일인 30일은 마침 한 달에 한 번 대인야시장이 열리는 날이었다. 해가 저문 7시. 추첨으로 뽑힌 번호표에 따라 좌판대가 펼쳐지고 인파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환하게 밝혀진 시장거리. 작가와 상인들이 내놓은 액세서리, 그림엽서, 머그잔 등을 사려는 사람들의 흥정소리로 시끌벅적해졌다. 손님들도 대부분 연인과 가족, 친구단위로 찾아온 젊은 층이었다. 

시장 중심부에는 문화프로그램이 한창이었다. 화가 박문종의 퍼포먼스와 광주의 유명 인디밴드 ‘우물안 개구리’의 공연이 이어졌다. 지나가던 이들은 모두 발걸음을 멈추고 같이 호응하며 대인야시장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홍대거리 못지 않은 젊음과 활기가 넘치는 새로운 전통시장의 모습이다.

대인예술야시장은 추첨을 통해 매대자리를 배정한다. 자리세는 없는 대신 일종의 자율적인 모금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대인야시장 내에 위치한 한평갤러리 모습.
대인야시장 매대 풍경.
견학을 마친 이종승 일산시장 회장은 “상인들의 단합력과 시장 인프라, 젊은 층의 참여 등 모든 면이 부럽고 또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무엇보다 이러한 성공사례를 우리 지역여건에 어떻게 접목시킬 것인지 고민이 많이 든다. 더 많이 배우고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시의회 연구모임인 사회적경제연구회의 회장을 맡고 있는 고은정 의원은 “시설현대화도 중요하지만 결국 어떻게 차별화하고 어떻게 사람들을 모이게 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부분인 것 같다. 시의원들도 더 많이 공부해서 시장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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