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 총리 후보자가 언론인들을 대학총장도 만들어주고 교수도 만들어주었다고 기자들에게 자랑했다가 청문회에서 곤욕을 치렀다. 언론인 출신 교수가 비교적 많은 곳이 필자의 전공분야인 언론학과 계열인데,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정치인의 ‘빽’ 덕분에 교수가 된 사람은 알지 못한다.
언론인들이 퇴직 후 새 일자리를 구하러 많이 가는 곳은 대학 근처가 아니라 국회와 청와대 주변이다. 선거 때가 되면 후보자 주변에는 언론담당 특보 혹은 홍보담당 특보란 명함을 돌리며 정치인을 돕는 전직 언론인들을 쉽게 만난다. 이미 기자시절부터 아예 정계에 줄을 대고 취재한 정보를 알려주면서 발판을 닦는 언론인들도 적지 않다. 그렇게 도운 후보가 당선되면 언론인들은 비서관으로 혹은 홍보담당자로서 본격적으로 정치판에 합류한다.
언론인들의 정계나 관계 진출은 박정희 정권시절부터 비롯되었다. 신문이나 방송 등 언론을 통한 여론조작이나 여론조성이 중요해지면서 언론인들이 동원되기 시작했다. 신문사 편집국장들은 고위정치인 보좌관으로, TV앵커가 국회의원으로 변신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민주화 이후에도 언론인들의 정계진출은 줄어들지 않았다. 서로 자기 언론사 출신자들을 국회의원이나 정부요직에 배치하려 언론사들이 암투를 벌이기도 했다. 신문사 편집국장이 국무총리 후보자가 되거나, 저녁 TV뉴스를 진행하던 사람이 청와대 대변인으로 변신하는 것을 정계도, 언론계도, 유권자도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정치인에 대한 기대수준이나 언론인에 대한 기대수준이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인 듯하다.
요즘은 공공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도 홍보담당자를 언론인 출신으로 채용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공공기관의 홍보업무는 전문성이 요구되고, 다루기 힘든 언론인을 상대해야하는 업무라서, 일반 공무원 대신 계약직이나 임기제 근로자를 활용한다. 언론노출이나 언론동향에 민감한 자치단체장이나 임기제 기관장의 경우 전직언론인들에게 홍보업무를 맡기는 경우가 많다. 선거공로자의 내정이나 은밀한 거래를 통해 채용하기도 하지만, 임용규칙에 따라 공정한 자격심사를 거쳐 채용하는 곳도 늘고 있다.
필자는 최근 두 곳의 정부기관에서 홍보업무 전담 직원 채용 면접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한 곳은 세종시로 이전한 중앙정부 부처였고, 한 곳은 광역자치단체였다. 주된 업무는 보도자료를 만들고 출입기자들의 취재를 돕는 일이다. 면접응시자들은 대부분 언론분야 유경험자들이었다. 경력 5년 미만의 젊은 구직자도 있었고, 20년 이상 언론계를 누빈 사람도 있었다. 기업이나 정당의 홍보를 담당한 경력들도 많았다. 그러나 일부 응시자 중에는 ‘대변인’이나 ‘불가근불가원’과 같이, 언론인들이라면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상식도 갖추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
세종시로 이전한 정부부처는 기관이 원하는 유능한 홍보담당자를 구할 수 없었다. 지역적 한계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전직 언론인들이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리 구직난 시대라고 하지만, 정년이 보장되지 않는 계약직 일자리를 위해 가족과 떨어져 세종시에서 직장생활을 하기 어려운 실정인 것이다. 반면 지방자치단체는 쉽게 적임자를 채용할 수 있었다. 유능한 지역언론인 출신 지원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언론인들의 홍보분야 진출은 잘 쓰면 약이 되고 잘못 쓰면 독이 되는 일이다.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뤄지면, 일석삼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언론인들에게는 재취업과 전문능력의 재활용을, 정부에게는 효율적인 대민홍보를, 주민에게는 정부신뢰도의 상승을 가져온다. 그러나 정치인과 언론인의 암묵적 거래로 변질되면 정부와 언론에 대한 불신을 더욱 심화시킨다. 권력이 선택한 언론인이 아니라, 정부와 국민 간의 소통을 원활하게 중개할 수 있는 유능한 언론인이 정부홍보 업무를 담당하는 시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장호순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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