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듯 닮은 우리 부부 이야기 방정환·전민경 부부

 

핸드폰 채팅을 통한 우연한 만남
9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 골인
결혼식 카퍼레이드 가장 기억나
“유기견 놀이터 만들고 싶어”

갑작스럽게 병원에 입원한 남자.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핸드폰 채팅을 하던 중 우연히 자신과 생일이 똑같은 한 여성을 만나고 호감을 갖기 시작한다. 문자, 통화로 인연을 쌓아가며 어느덧 서로에게 빠져든 남과 여. 반년 뒤 한 놀이공원에서 첫 만남을 약속하는데.

흡사 영화 줄거리 같은 이야기. 지금은 8년차 부부인 전민경(39세), 방정환(41세)씨의 연애스토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여느 젊은 부부들처럼 티격태격하면서도 누구보다 서로를 아끼는 이들. 마냥 밝아 보이는 두 부부에게도 결혼에 골인하기까지는 수많은 사연이 있었다고 한다.

생일까지 같았던 기막힌 인연
“한식당에서 주방일을 하다가 다쳐서 잠시 쉬고 있었어요. 심심해서 핸드폰 채팅을 하는데 0429, 그러니까 저랑 같은 생일을 아이디로 쓰는 여성분이 있더라구요. 호기심도 생기고 인연이다 싶어서 말을 걸었죠.”

얼굴도 이름도 사는 곳도 몰랐지만 무작정 ‘작업’부터 걸었다는 방정환씨. 문자·통화를 주고받으며 천생연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남자는 경기도 광주시, 여자는 고양시. 다들 일에 한창 바쁠 때라 얼굴을 마주하기에는 결코 쉽지 않은 거리였다. 연락만 주고받던 이들이 처음 만난 것은 한 달이 지난 뒤였다. 

“마침 친구 만나러 용인 갈 일이 있었어요. 근처고 하니 에버랜드에서 한번 만나자고 이야기 했죠”-아내. 그렇게 시작된 첫 만남. 첫눈에 반했다는 방정환씨와 달리 아내 전민경씨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

“최악이었어요. 손에는 반지를 주렁주렁 달고 양복바지를 배바지처럼 올려 입고 어깨뽕 잔뜩 들어간 윗도리에 머리스타일도 제가 제일 싫어하는 모습이었어요. 걸어오는 걸 보며 저 사람만은 아니었으면 했는데.(웃음)”

첫 데이트 후 연락을 피했다는 전민경씨. 반면 호감을 느낀 방정환씨는 계속해서 연락을 시도했다. 6개월간 지속된 남자의 구애. ‘네가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문자에 여자의 마음도 차차 돌아서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착하고 진실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만나기 전에 조건을 달았어요. 제가 원하는 스타일로 바꾸고 결정하겠다고. 그래서 머리도 깎고 옷도 새로 사서 입히니 그때서야 좀 괜찮아 보이더군요.”

남대문에서 두 번째 만남을 가진 이들은 정식으로 교제를 선언했다. 2000년 2월 10일. 유달리 따뜻했던 겨울이었다.

9년간의 연애에 울고 웃던 기억

연애기간만 무려 9년. 날짜수로는 3300일을 넘게 만난 셈이다. 멀리 떨어져 있다보니 일주일에 한두 번 만나는 게 고작이었지만 그만큼 서로에게는 애틋했던 시간이었다.

“지하철 타고 여기(고양시)까지 보통 3시간 정도 걸려요. 그렇게 만나고 다시 집에 가면 하루가 훌쩍 지나는 거에요. 그래도 마냥 좋았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묻자 만난 지 1000일 되던 날 화정의 한 술집에서 했던 방정환씨의 프러포즈를 이야기했다. 장미꽃 100송이를 사들고 카드에 문구도 쓰고 음악 DJ에게 사전에 부탁까지 했다. 당시에 했던 멘트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못난 놈 만나줘서 고맙고 앞으로 영원히 사랑할게.”

위기도 있었다. “남편이 평소에는 착한데 술버릇이 아주 안 좋았어요. 주량이 넘어가면 통제가 안 될 정도였죠. 그런 모습이 너무 싫어서 1년 동안 소주를 끊지 않으면 영영 안 만나겠다고 선언까지 했어요.” 그렇게 1년이 지나고 나니 거짓말처럼 술버릇이 고쳐졌다. “이제는 주량이 넘으면 그냥 잔다”고 웃으며 말하는 방정환씨는 아내의 그때 행동이 지금까지도 고맙단다.

오랜 연애기간 끝에 2008년 5월 마침내 두 사람은 백년가약을 맺었다. 결혼이 늦었던 이유에는 사실 처가댁 식구들의 극심한 반대도 있었다. 홀로 6남매를 키워온 장모에겐 순박하기만 한 방정환씨의 모습이 영 탐탁지 않았던 것.

“엄마도 언니들도 모두 반대했어요. 너무 약해 보인다. 가장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 내 인생이니까 내가 책임진다고 했는데도 막무가내였죠. 심지어 저사람 아니면 결혼 안하겠다고 했는데 그럼 결혼하지 말라는 이야기까지 들었다니까요(웃음).”

결혼식 당일까지도 탐탁지 않아했다는 처가 식구들. 하지만 워낙 착하고 사람들을 살갑게 대하는 방정환 씨의 모습에 곧 마음을 열었다. 이제는 장모님을 ‘엄마’라고 부를 정도로 둘도 없는 사이가 됐다. 얼마 전에는 방씨에게만 녹용을 선물했다고 하니 사위사랑은 장모라는 말이 괜한 말은 아닌 듯싶다.

 

결혼10주년 때 후원아동 만나고 싶어
좌충우돌 연애과정만큼이나 두 부부의 결혼식은 남달랐다. 광주시에 하나밖에 없는 예식장. 거기다 남편 집안이 집성촌 유지이다 보니 친척, 이웃, 심지어 동네 어르신들까지 축하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당시 폐백비로만 수백만원이 들어왔을 정도였다. 

 

 

이날 결혼식의 하이라이트는 카퍼레이드였다. 전민경씨가 활동하던 자동차 동호회 회원들이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특별한 이벤트를 마련한 것.

“동호회 회원들이 차 12대를 끌고 왔어요. 그중 선루프 있는 차량을 웨딩카로 꾸민 다음 가운데에 놓고 차례로 출발하는데 그 모습이 장관이었죠. 시내 사람들도 다 나와서 구경하고 그랬어요.”-아내

“저희가 결혼식이 2시 반, 비행기 시작은 8시 반이어서 시간이 좀 촉박했어요. 엄청 막히는 시간대였는데 다행히 웨딩차량행렬인 걸 보고 주변 차들이 다 비켜주더군요. 결혼 축하한다고 경적도 울려주고. 너무 고맙고 추억에 남는 순간이었어요. 카퍼레이드를 하면서 노래부른 것도 기억에 남고요.”-남편

결혼한 지 1년 뒤 남편이 일산으로 올라오면서 두 부부는 드디어 오랜 주말부부생활을 청산했다. 낯선 환경에 처음에는 적응이 너무 힘들었다는 방정환씨. 다행히 3년 전 처형을 통해 아이쿱 생협을 소개받아 현재까지 일하고 있다. “제가 하는 일에 나름대로 자부심을 갖고 있거든요. 이곳에서 능력도 인정받고 자유로운 분위기라 마음에 들었죠.”

 


두 부부에겐 아이가 없다. 대신 동생을 통해 알게 된 월드비전이라는 단체를 통해 어려운 환경에 처한 해외아동들을 후원하고 있다. 처음에는 1명, 1년 뒤 담배를 끊으면서 각각 한 명씩 더 후원하기로 결정해 현재 3명을 후원하고 있다. 결혼 10주년인 2년 뒤에는 그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엘살바도르에 방문할 계획이다.
유기견 동호회 활동을 하며 유기견 보호에도 관심이 많다는 두 부부. 현재 2마리를 키우고 있지만 여력이 되면 더 데려올 생각이다. “열심히 돈 벌어서 나중에 전원주택을 지으면 거기에 애견놀이터를 만들고 싶어요. 버려진 유기견들을 데려와서 맘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거죠.”

얼마 전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강아지 ‘환희’ 이야기를 하며 잠시 눈물을 지어보인 이들 부부. 남편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물어봤다.

“아내가 사랑스럽고 한가족이 될 수 있어서 지금도 행복해요. 그리고 하늘나라로 간 환희에게도 사랑한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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