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에 의하면 2014년 기준으로 전 세계 인구는 72억 명이다. 과거 입버릇처럼 ‘60억 인구’ 운운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 사이 많이 늘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인구는 어떨까.
2014년 8월 22일 기준으로 살펴보면 대한민국 총 인구는 51,098,531명이라고 한다. 전 세계 국가 인구 기준으로 따져보면 26위에 해당한다. 결코 적은 숫자라고 할 수 없다.
필자 역시 그중 한 명이다. 마찬가지로 이 글을 읽는 독자 역시 그중 한 명을 차지해 결과적으로 이처럼 거대한 인구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늘 이런 생각을 해 왔다. 모래알처럼 많은 이 사람들 중에 과연 나는 무엇일까. ‘나는 왜 이 지구에 태어났으며, 내가  생을 마칠 때는 또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까’ 하는 상상이 그것이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나에게 부여된 소명(召命)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해 보곤 한다.
국어사전에서 보면 소명[召命]이라는 뜻은 ‘어떤 일이나 임무를 하도록 부르는 명령’이라고 정리되어 있다. 아무런 이유없이 태어난 생명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스스로 깨닫고 인식하지 못해서 그럴 뿐, 사실은 누구나 어떤 이유가 있어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나는 생각해 왔다. 예를 들어 백범 김구 선생님이나 안중근 의사, 또는 ‘인류애의 상징’인 1952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 슈바이처 박사나 저 유명한 나이팅 게일 같은 인물도 처음부터 위대한 위인은 아니었다. 다만 자신이 소명 받았다고 자부한, 또는 시대적 상황이 부여한 어떤 소명을 거부하지 않고 응답한 어떤 행위를 후대가 높게 평가해 위인이 된 것 아닐까.
이처럼 사실은 누구나 어떤 소명이 있는 것인데 다만 이를 깨닫고 행하느냐, 아니면 자기에게 부여된 어떤 소명을 영원히 깨닫지 못한 채 영원히 생을 마감하느냐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부여된, 또는 내 스스로가 부여한 소명을 인권운동가라고 생각했다. 비록 내가 가진 것은 작고 보잘 것 없는 힘이지만 나의 작은 관심과 노력을 보태어 누군가의 좌절과 절망, 불안감을 덜어내 줄 수 있다면 기꺼이 하겠다는 의지가 내가 가진 소명이라고 여겨왔다.
이러한 노력은 사실 누구나 할 수 있다. 하다 못해 늙고 지친 누군가가 자신의 혼자 힘으로 버거워 하는 짐을 들고 걸어갈 때 그것을 함께  들어주는 것 역시 누군가가 할 수 있는 ‘작은 소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바로 그 순간에 그 길을 같이 걸어가도록 하는 것, 그래서 그 누군가의 힘겨움을 지켜보도록 했고 이를 함께 들 수 있도록 기회가 마련되는 것이 운명이라면, 이때 누군가를 도와주는 것은 내가, 또 우리가 이 세상에 온 작은 소명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은 자기가 이 세상에서 태어난 소명을 깨닫지 못한 채 안타까운 일생을 마치곤 한다. 그중 가장 안타까운 것이 자살로 자신의 생을 끝내는 이들이다.
나는 그러한 이들에게 정말 묻고 싶었다. 당신의 소명이 무엇이었는지 알고 떠났냐고? 아무 이유없이 이 세상에 온 사람은 없다. 더 이상 죽지 마라. 당신은 당신의 소명이 있다. 그 소명을 마칠 때까지 누구도 함부로 죽을 이유가 없다. 함께 ‘더불어’ 살자.                                  고상만 인권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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