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석양 무렵의 자유로를 달리다보면 여러 무리의 철새들을 만난다. 저 먼 러시아 북부지역으로부터 날아온 그 철새들은 본능적이지만 매우 조직적으로 날아서 정확하게 목표지점에 도달한다. 리더의 인도에 따라 편대를 이루어 날면서 ‘끼룩끼룩’거리며 끊임없이 의사소통을 하는데 여러 철새 중 기러기는 특히 질서정연하다. 나는 그들의 비행을 보면서 최근의 일부 정치인들에 빗대어 철새를 말하는 것이 부당하지 않나 생각됐다.

그런데 소위 철새 정치인들이 이 땅에서 태연스럽게 활동할 수 있는 저변에는 민주정치의 주인이라는 유권자들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정치적인 신념도 없이 이해득실에 따라 옷을 바꿔 입는 정치인들을 유권자들이 용납했으므로 가능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이 바르게 판단을 내려 자신의 한 표를 제대로 행사했더라면. 그래서 무원칙한 태도를 보인 정치인들을 따끔하게 경고해 줄 수 있었다면. 따라서 민의가 무엇이며 그 민의가 얼마나 무서운 힘을 가졌는가를 확실하게 알려 줄 수 있었다면. 그래왔다면 어떻게 왔다 갔다 하는 행동이 되풀이 될 수 있겠는가.

지난 유월에 있었던 지자제선거에서 회원들과 함께 눈에 불을 켜고 이곳저곳의 유세장을 열심히 쫓아다니며 바른 선거를 위한 시민활동을 했었다. 자신의 행적과 맞지 않은 공약의 남발, 금품향응제공을 비롯한 각종 선거법 위반의 사례들을 쉽사리 발견할 수 있어서 매우 실망스러웠다. 특히 금품향응제공은 조직적이고 광범위하게 저질러지고 있었는데 매우 은밀하게 이루어졌다. 대부분 합동유세가 끝난 직후 슬금슬금 너댓명이 부근에 모여 현장을 한참 벗어난 곳의 음식점으로 이동해서 식사를 하곤 했다. 계산할 때는 개인적으로 대접하듯 위장하기 때문에 심증은 가지만 더 이상 캐들어가기가 어려웠다.

금품향응 제공이야말로 국민을 우습게 보는 행태인데 이같은 불법이 용납될 수 있도록 한 유권자들의 깨어있지 못한 의식은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 밥 사준다고 떼를 지어 왔다갔다하는 것, 먹는 것과 찍는 것은 다르다고 말하는 이중적인 태도야말로 철새정치인과 다름이 없는 철새유권자가 아니겠는가?

이제 대선이 두달밖에 남지 않는 가운데 정치판이 합종연횡을 거듭하면서 점차 선거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많은 이들이 정치인들에 대해 식상의 수준을 넘어 지겨워 하지만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있는 한 아무도 정치에 대해 냉담할 수 있는 명분은 없다. '정치 말고도 신경쓸 것이 많은데 무엇 때문에 정치에 골머리를 썩이겠는가' 반문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구조적으로 모두가 정치적이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 있다. 싫던 좋던 정치가들이 우리의 실생활과 직접 관련이 있는 여러 문제들의 키를 움켜쥐고 있기 때문이다. 비판적인 어떤 사람들은 오늘의 어려움들이 정치인들 탓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우리가 안고 있는 고통의 일정부분은 유권자의 책임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우리가 그들을 선택했기 때문에, 우리가 그들에 대하여 냉담한 나머지 한 표를 사장시켜 선택의 흐름을 왜곡시킨 때문도 있는 것이다.

이제까지 시민들의 정치의식을 깨우기 위해 시민단체 등이 주도해서 존경받는 인사들을 초청하여 단기 민주시민대학을 열어보기도 하고 바른 선거 가이드북을 만들어 열심히 시민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했었다. 그러나 기대하는 만큼의 호응을 받지를 못해 매우 안타까웠다.
좋은 세상, 좋은 사회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좋은 의식, 수준 높은 민주시민의식을 갖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이 정치적인 여러 현상들에 대한 무관심과 비판의 수준을 넘어서 힘을 합하고, 발언하며, 신고하고, 투표하는 등의 시민정신, 참여정신이 필요하다. 민주주의사회는 다수가 함께 만들어 가는 사회인 것이다.
<고양시 바른선거시민모임 공동대표·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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