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隱退)는 물러나 숨는다는 의미로, 국어사전은 ‘맡은 바 직책에서 손을 떼고 물러나서 한가로이 지냄’이라고 설명한다. 고단한 세상살이에서 한 발 물러나 여유롭고 평온하며 자유로운 삶을 즐기는 것이 바로 은퇴이다. 그래서 사회보장제도가 정착된 유럽이나 미국의 근로자들은 은퇴를 간절히 바라고, 은퇴 후의 삶을 즐긴다. 서구사회에서는 50대 후반 이후부터 삶의 만족도가 높아지고, 행복하다는 사람들의 숫자가 크게 증가한다.
한국 사회에도 바야흐로 은퇴자의 시대가 도래했다. 그러나 주변에서 진정한 은퇴의 삶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기란 쉽지 않다. 은퇴는 직장을 그만 둔다거나 돈벌이를 중단한다는 경제적 측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자연 은퇴에 대한 기대나 희망보다는 불안과 두려움이 팽배해 있다. 은퇴에 들어가거나 은퇴를 앞둔 사람들 대부분이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은퇴 준비가 미흡하기 때문이다.
지금 본격 은퇴를 맞고 있는 세대들은  50년대 후반과 60년대 초반에 태어난 소위 ‘베이비 붐’ 세대들이다. 한국사회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변경되는 전환기를 살아온 사람들로, 부모들은 농촌에서 농사를 짓고, 자신들은 도회지에서 직장생활을 해온 세대들이다.
한국의 ‘베이비 붐’ 세대들은 대부분 은퇴준비를 하지 못했다. 우선 부모로부터 은퇴에 대해 배우지 못했다. 농사를 짓는 부모세대들에겐 은퇴가 없었기 때문이다. 수족이 허락하는 한 땅을 파고 풀을 뽑는 것이 농부의 삶이기 때문이다. 교육환경과 직장문화도 은퇴 준비를 어렵게 했다. 그들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한 세대가 될 것이다.
그렇게 살면 노후는 걱정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아이들에게는 번듯한 직장이 하늘의 별자리가 되었고, 제 앞가림도 하기 힘든 상황이다. 젊음을 바쳐 헌신한 직장은 이제는 나와는 무관한, 남들의 일터가 되었다. 은퇴를 즐기기는커녕 장차 먹고 살 걱정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지금의 은퇴세대들이 은퇴를 즐기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대부분 노후생활이 힘든 도시지역에 살고 있다는 점이다. 농촌지역에서 태어났지만 도시지역에서 교육받고 직장생활을 한 세대들이다. 그들이 태어났던 시골은 이미 도시개발로 사라졌거나, 먼 친척 외에는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낯선 곳이다. 지금의 은퇴세대들은 도시생활의 세련됨과 편리함에 익숙한 세대들이다. 도시생활은 직업활동을 하는 젊은 세대들에게는 적합하지만 경제활동을 중단한 은퇴세대들에겐 머무를 곳이 못된다. 비싼 물가와 높은 생활비 탓이다. 극소수의 부유층을 제외하곤, 대도시는 은퇴자들에게는 ‘접근금지’ 지역이다. 한때 그들이 누볐던 도시의 빌딩 숲은 주머니가 가벼운 그들을 더 이상 반기지 않는다. 도시의 은퇴자들에게 개방된 곳은 무료 지하철로 접근이 가능한 도시 근교의 등산로가 전부다.
많은 은퇴자들이 도시에 남아서 낮은 보수라도 받으면서 일자리를 구하려고 애쓰고 있다. 생계유지를 위해 은퇴가 주는 여유와 자유를 연기하거나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은퇴의 진정한 의미를 향유하는 삶을 살려면 지역을 바꾸어야 한다. 도시는 젊은이들에게 물려주고 도시 밖으로 흩어져 살아야 한다. 직장에서만 물러날 것이 아니라 도시에서도 물러나는 것이 진정한 은퇴이다.
장호순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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