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란 건 늘 뭔가 새롭게 시작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어린잎이 거친 가지를 뚫고 나오는 걸 보아도 또 언 땅을 뚫고 나오는 새싹을 보아도 그 힘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 수 있다.
나도 그 기운을 받은 덕인지 얼마 전에 새로운 기분으로 정리를 해봤다. 우선 책 정리다. 그간 쌓아두었던 인쇄물과 대학 때 쓰던 교재 같은 걸 과감히 정리했다. 마치 귀한 보물이라도 되는 양 끌어안고 있던 짐들을 버리려고 보니 그 양이 엄청났다. 알게 모르게 세월과 함께 쌓인 짐들이다. 끌어내고 묶고 버리고, 또 끌어내고 묶고 버리고 몇 차례나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다. 지나가시던 분이 버리는 짐이냐고 물어 그렇다고 했더니 당장 그 짐을 싣고 가신다. 내게는 쓸모없는 짐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것이 된다니 기쁘기도 했다. 그게 돈으로 몇 푼이나 될지 몰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정리를 마친 후 집안을 둘러보니 집안이 더 환해진 것 같다. 묵은 짐을 끌어내 정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새삼 깨달았다
물론 봄날이 나를 정리로 이끈 건 사실이지만 그 외에 또 한 가지 이유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양가 부모님들의 건강상태다. 그간 큰 탈 없이 지내오시던 분들이 올 들어 갑자기 병원 출입이 잦아지신다.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집안에 앓는 사람이 있으니 온가족이 다 바빠진다. 특별히 돌봐드려야 할 상황은 아니지만 병원을 드나드는 것만으로도 보통 일이 아닌 것 같다. 병세가 호전되어 집으로 돌아 온 어른이 자식들을 불러 자신이 가지고 있던, 나름 귀한 물건을 나눠주셨다. 뭔가 주변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드셨던 모양이다. 죽은 사람이 가졌던 물건은 받고도 기분이 좋지 않을 터이니 이렇게 살았을 때 주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제는 쓰지 않는 물건, 쓰지 않을 물건들을 정리하실 거라고 하신다. 내가 새삼 정리를 해야 하는 것에 대해 생각했던 계기가 된 것이다. 사람이 한평생 살면서 얼마나 많은 물건을 사고 지니는지 셈해 본다면 그 양이 상당할 것이다. 옛날 노인들이 대부분 그렇듯 한번 장만한 물건은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집집마다 답답할 정도로 물건이 꽉 들어차 있다. 노인들이야 지금껏 그렇게 사셨으니 누가 뭐래도 자신의 생각을 바꾸긴 힘들 것이다.
나는 어른들을 통해 정리의 필요성을 깨달았으니 앞으로 실천하며 살려고 생각한다. 필요 없는 물건은 욕심 내지 말고 쓰지 않는 물건은 지니지 않으려 노력할 것이다. 나의 이런 결심이 얼마나 오래갈지는 사실 나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삶을 돌아보는 좋은 계기가된 것만은 분명하다.
세상엔 좋은 물건들이 너무 많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물건에 대한 욕심이 드는 게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그 물건을 팔려고 얼마나 많은 이들이 노력을 하는가. 넘어가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할 일이다. 그러나 그 물건에 집착하게 되는 순간 자신의 삶을 소모하게 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맘에 드는 물건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그 돈을 벌기 위해 인간은 필요이상의 노동을 하게 된다. 이 얘기는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그의 저서 월든에서 한 얘기다. 나도 그의 이런 논리에 공감한다. 곧 쓰지도 않을 물건을 위해 자신의 삶(시간, 노동)을 버리지 말고 보다 나은 일에 매진하는 것이 더 보람 된 인생이 될 것이다.
2주 전 가까운 인척 중에 두 분이나 세상을 떠나셨다. 이런 일이 더 잦아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고단한 삶이나마 아름답게 마무리 하시고자 주변을 정리하려는 어른들의 지혜에서 나도 깨닫는 바가 있다.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빈자리가 누추하지 않도록 하려는 배려에 감동도 받았다. 봄은 역시 많은 것들을 새롭게 한다. 또 새롭게 보도록 한다.
고광석 대명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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