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의정부시의 한 오피스텔에서 큰 불이 났다. 건물 1층 주차장에서 난 불이 순식간에 인근 건물 꼭대기까지 번졌다. 사망자만 5명에 부상자 120여 명, 집을 잃은 이재민도 수백 명에 달했다. 토요일 아침에 일어난 갑작스런 사고에 늦잠을 자던 주민들의 인명피해가 특히 컸다. 그 후에도 서울 도곡 시장과 천안 부탄가스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한데 이어, 최근에는 강화도의 한 캠핑장에서도 불이나 어린이 3명을 포함해 5명이 목숨을 잃는 등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는 크고 작은 화재사고가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이와 같은 화마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먼저, 각 부처와 전문기관에 분산되어 있는 화재 예방과 진화 및 피난안전 등에 관한 기능이 통합적으로 계획, 관리되어야 한다. 예방에 관한 사항은 건물의 설계단계에서 주로 다뤄지므로 건축 관련 부처에서 관장하고 있다. 건물에 불이 잘 붙거나 번지지 않는 구조와 자재를 사용하도록 강제로 규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진화는 화재 발생 후에 작동되는 기능으로 소방 관련 부처에서 관리하고 있다. 피난안전에 관한 사항은 모두에 해당되지만, 오히려 그래서인지 대책도 확실치 않은 듯하다. 화재로부터 빨리 탈출하지 못하고 연기에 질식해 위험에 처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그 단적인 예다.
이에 따른 폐해가 적지 않다. 예방시설과 진화시설 모두 설치에 적지 않은 비용이 들고, 따라서 법적 규제에 맞도록 마지못해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화재 예방시설이 잘 갖춰진 건물에 진화시설까지 잘 갖춰진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반대로 화재 예방시설이 미흡한 건물에 진화시설까지 부실하다면 결과는 어떨까. 정부의 규제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모든 상황을 예상해 제도에 반영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화재의 예방시설과 진화시설은 상호 보완관계에 있어야 한다. 분야별로 획일적인 기준을 적용하기보다 현장의 여건에 따라 적합한 시설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 둘째,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에 우리의 화재안전 기술은 다분히 수동적이다. 화염과 연기 속에서 위험에 빠져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고 헤매는 조난자들이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고 길을 안내해주는 기술이 턱없이 부족하다. 화재 발생여부를 감지해 소화 장치가 자동으로 작동되면서 위험을 알려주는 정도다. 누구도 믿지 말고 각자가 알아서 대피해야 한다는 화재현장에서 들은 주민들의 절규가 귓가에 맴도는 이유다.
현대는 바야흐로 융·복합 시대다. 하지만 우리의 화재안전 기술은 아직 아날로그 수준에 머물러 있다. 건물에 설치된 각종 화재안전 시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계되지 못하고 제각각 작동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화재가 발생했을 때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체계적인 진화를 수행하거나, 위험에 빠진 조난자에게 신속한 정보를 제공하기에 우리의 기술은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최근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서 ICT 기술을 접목한 화재안전 시스템을 개발하고자 화재안전연구소를 신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지막으로, 의정부 화재사고에서도 볼 수 있듯이 원인의 단순함에 비해 재난과 피해의 규모는 너무나 컸다. 화재사고 이후 과거 시행된 규제완화에 따라 건축 관련 규정에 허점이 있었다는 판단에 따라 여러 가지 대비책들이 집중적으로 검토되고 있다. 하지만 과연 이것만이 문제였다 할 수 있을까? 소방당국이 출동한 이후에도 옆 건물로 번져나간 불을 막아내지 못했냐는 현장 주민들의 원성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소방당국의 헌신적인 노력이나 전문성을 탓하자는 게 아니다. 비상시 소방당국은 가장 먼저 달려가 화재를 진압하고 인명을 구조하기에도 여념이 없다. 국가적 재난사태에 각 분야 전문가의 참여가 필요한 이유다. 사고 후 단지 원인을 알기 위해서 전문가를 찾기에 앞서, 비상대응 초기부터 이들의 도움을 받는 대응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국민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는데 너와 내가 있을 수 있겠는가. 화재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신 고인들의 명복을, 그리고 유가족과 부상을 당하신 분들께 심심한 위로를 드린다.
이태원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화재안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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