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장애 가진 두 자매 이야기

▲ 능곡역 역사 안에 자리 잡은 청소년 카페 ‘놀러와’에는 유씨 자매가 있다. 독서가 취미인 언니 유가영(28세, 사진 왼쪽)씨와 바리스타를 꿈꾸는 유지영(25세, 사진 오른쪽)씨다. ‘놀러와’에서 청소년들을 위해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둘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책은 나의 친구”
언니 유가영
언니 유가영씨는 태어나고 얼마 안 돼 장애 2급 판정을 받으면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특수학급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어린 시절엔 동생들과 함께 동네 오락실에 함께 다녔다. “동전이 생길 때마다 오락실에서 게임을 했던 게 기억난다”고 말했다. 누구에게나 기억되는 것처럼 2002년 월드컵은 유씨의 기억에도 남아있다. “이탈리아랑 경기할 때 안정환 선수가 첫 번째 슛을 실패했는데 이어서 슛에 성공했고 집 주변에서 환호성이 나오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일산정보고를 다니면서 여러 직업교육을 받아온 유가영씨는 졸업 후에 고양시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박스를 포장하는 일을 2년 동안 했다. 복지관을 나오고 책을 만드는 공장에 취업했을 때 유씨는 실습기간을 거치며 일을 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만하고 집에 가라고 했는데 그냥 계속 종이를 접었다. 그랬더니 시키지 않았는데도 계속 하는 모습을 보고 일을 계속 하라고 했다.”

이후 그렇게 일을 계속 하다보니 몸무게가 10㎏이 줄었고 어머니가 일을 그만두라고 권유해서 멈추게 됐다. 지금은 길을 잘 못 찾는 언니를 잘 도와주는 동생 유지영씨와 함께 ‘놀러와’에서 카페 정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유가영씨에게 책은 가장 친한 친구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책 읽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는 유씨는 “책을 읽으면 기억에 남는 내용들이 많기 때문에 책방 같은 곳을 좋아한다. 나에게 책은 친구다. 처음에 책을 봤을 때는 그냥 몇 권 읽고 말자 생각했는데 한 번 읽고 두 번 읽다 보니 친구가 된 것 같다. 같이 대화할 수 있는 친구가 많이 없어서 책이 친구가 됐다”고 했다.

유가영씨는 장애인들을 돕고 싶다고 말한다. “국립재활원에 들어갔을 때 나보다 더 걷기 힘든 여자아이를 봤는데 많이 안타까웠다. 나는 걷고 뛸 수 있는데 그 아이는 걸을 수 없으니까 돕고 싶었다”고 말한다. 유씨의 바람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차별 없이 사회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전에는 주변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하기 힘들었다. 요즘에는 길을 가다가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볼 수 있다.” 유씨에게 가장 하고 싶은 일을 물었더니 “하고 싶은 일 보다는 길을 잘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바리스타가 나의 목표 “
동생 유지영
동생인 유지영씨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장애를 알게 됐다. 장애 3급 판정을 받은 유씨는 “다른 과목들은 괜찮았는데 영어나 수학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유씨는 “그냥 내가 공부를 못 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내가 장애가 있는 거였다”고 웃으며 말했다.

유씨는 고등학교 시절이 가장 즐거웠다고 말했다. “일산정보고 도움학급에 배정됐는데 여러 가지 직업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특수학급이 아닌 다른 반 친구들이 우리와 함께 잘 어울렸다. 고3 수련회 때 제주도에 갔던 일이 가장 즐거웠다. 고등학교 졸업식 때는 “친구들이랑 떨어지는 것이 아쉬웠다. 그동안 잘해줬던 선생님들과 작별할 생각을 하니 마음이 좀 울컥했다”고 했다. 졸업 후에 연락이 끊어졌었지만 요즘엔 SNS를 통해 다시 연락을 하고 있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유지영씨는 주변 권유로 상자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2년 동안 일하면서 일에 자신감을 얻었다. 공장에서도 인정받았고 남자가 하기 힘든 일도 거뜬히 해냈다. 익숙했던 그 일을 그만둔 이유는 자신보다 생활이 불편한 언니를 위해서였다. “언니는 내가 없으면 길을 찾기 힘들어 해서 같이 일을 하기로 했다.” 이후 언니 유가영씨와 닭 공장에 다녔는데 “언니와 함께 일하니까 마음이 편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년 후 남동생이 혈액암에 걸리면서 이 일도 그만둬야했다. 유씨는 “우리가 일을 하고 있으면 치료비 지원이 안 나와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유 자매의 남동생은 치료가 돼서 일을 하고 있다. 닭공장을 그만 둔 후 언니와 함께 식품회사에서 일하기도 했지만 교통편이 불편해 그만두게 됐다.

“지금은 능곡역 놀러와 카페에서 언니와 함께 자원봉사를 한다. 그런데 청소하고 난 다음은 너무 지루하다.” 그래서인지 지영씨는 요즘 매주 바리스타 교육을 받고 있다. 유씨는 “‘뭐라도 해야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눈에 들어온 게 바리스타였다. 왠지 멋있어 보였다. 막상 시작하니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꼭 바리스타 자격증을 딸 것”이라고 말했다.

유지영씨는 “아직 10년 앞은 생각 안 해봤지만 지금 보다 더 잘 살았으면 좋겠다”며 “가족 여행을 안 가봤는데 올해에는 꼭 언니와 함께 여행을 가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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