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6일 새벽 6시, 나는 행신역에서 목포로 가는 첫 기차에 몸을 실었다. 바로 1년 전 대한민국을 충격과 슬픔으로 빠뜨린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팽목항을  방문하기 위한 여정이었다.
열차가 목포항에 도착하기까지는 약 3시간 정도가 걸리고 다시 그곳에서 팽목항에 가려면 1시간 30분을 더 차량으로 이동해야 한다. 이 짧지 않은 길을 가면서 나는 다시 한 번 그날의 아침을 떠 올렸다. 2014년 4월 16일은 수요일이었다. 그날 오전 9시 26분경, 나는 ‘뱅골 수로’라는 남녘 바다에서 여객선이 침몰한다는 속보를 처음 들었다. 추후 밝혀진 사실에 의하면 그 시각은 세월호가 본격적으로 기울어가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큰 걱정을 하진 않았다. 이미 날은 훤하게 밝은 후였고 방송에서는 헬기가 떠 있었고 해경 배 역시 여러 대가 도착한 상태였다. 이처럼 밝은 날, 국민 모두가 지켜보는 생중계까지 이뤄지는 마당에 사람을 구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는 산산이 부서졌다. 생중계로 보도된 그 영상은 더 큰 슬픔과 고통으로 남았고 이름마저 낯설었던 ‘팽목항’과 ‘뱅골 수로’는 전 국민의 기억 속에 끔찍한 비명으로  새겨졌다. 그 일이 어느덧 1년 전이다. 하지만 1년을 지나 다시 맞이한 이날, 나는  온전한 슬픔으로 304명을 애도할 수 없었다. 우리가 구하지 못한 304명 중 여전히 9명의 실종자는 그대로 바다에 남아 있고 유가족이 요구해 온 조사위원회는 첫걸음도 떼지 못했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처음엔 사고였으나 이후엔 ‘구하지 못한’ 사건이 되었고 지금은 참사가 되었다. 국가가 자기 위치에서 정말 최선을 다했는지 여전히 나는 의문이다. 출동한 해경에게 손도끼 하나만 있었어도 아크릴 투명판 배 안에 갇혀 절규하던 아이들은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해경은 평소 손도끼를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1590억원을 들여 건조했다는 최첨단 해난 구조함 ‘통영함’은 부실한 성능으로 끝내 출동조차 못했다. 황기철 해군참모총장이 구속된 이유다. 이처럼 공무원들의 비리와 무능이 총체적인 참사로 연결된 사건, 바로 세월호 참사였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다시 또 이런 비극이 일어나서는 안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통해 참사의 원인을 밝혀야 한다. 더 이상 국민을 죽이지 않으려면, 그래서 또 다른 부모와 형제를 울지 않게 하려면 이번에 제대로 밝혀 책임질 사람은 책임져야 한다. 세월호 비극은 우리 일이다. 절대 유족만의 일이 아니다. 만약 이를 외면한다면 이번엔 그들이지만 다음엔 우리가 그 피해자가 되기 때문이다.
팽목항에 도착한 후 나는 애절한 마음으로 넋을 추모했고 함께 울었다. 두 아이를 둔 아버지의 심정으로 나는 진심으로 아파했다. 그리고 9명의 실종자 앞에서 약속했다. 다시 시작한다. 나와 이웃의 안전을 위해 끝까지 ‘진상 규명’과 이를 위한 ‘세월호 인양’을 정부에 요구할 것이다. 누구라도 마찬가지다. 내 자식이 그리 죽었다면 나 역시 저 유족과 무엇이 다를까. 그런데 지금 당장 이 일이 나와 상관없다고 외면한다면 그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미국의 유명한 민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말했다. “때론 침묵이 악한 사람의 거친 아우성보다 더 죄가 될 때가 있다.” 나와 이웃을 위해 나는 침묵하지도, 가만히 있지도 않을 것이다. 세월호 진상규명을 요구한다. 정부는 응답하라.
고상만 인권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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