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은 간호사의 건강읽기

충장로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지니 집 주변의 철쭉이 봄의 아름다움을 더해 준다. 올해 벚꽃은 세월호 희생자같이 약해 보여 벚꽃을 보면서도 마음이 아팠다. 4월 16일 즈음에는 세월호의 희생자와 가족을 위한 여러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는가 싶더니 정치 부패 사건이 터지고 나니 관심이 슬그머니 사라진다. 오월에 들어서 한껏 멋을 낸 철쭉을 보면서 마음이 밝아지면서도 밝아진 마음이 두렵고 무겁다.
4월에 있는 KBS 명견만리 김영란 석좌교수 편을 보면서 “아! 저렇게 희망을 갖고 긍정적으로 노력하는 분이 있구나” 생각했다. 대중매체를 통해 접한 김영란법은 아무 소용도 없는 법 같은 생각이 들었는데 법을 제안한 당사자가 대중매체에서 난타를 당하는 김영란법의 통과를 긍정적으로 말하니 우리 사회가 희망이 있어 보였다. 세월호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여야 하는 당위성이 김영란법이고 김영란법을 시작으로 인재형 부패고리를 끊으면 우리나라도 희망이 있지 않을까?
얼마 전에 그리스철학을 공부하는 모임에서 이번 선거이야기가 나왔다. 다수가 진보 입장이어서 상대적으로 나는 보수 입장이 되었다. 진보측이 이해 안 되는 상황은 고 성회장 건으로 새누리당의 부정부패가 만천하에 드러났는데 국민이 어떻게 새누리당 편을 들 수 있느냐는 것이다. 반농담의 내 대답은 “어쩐지 진보측을 지지하면 하루아침에 망할 것 같고 집권당은 며칠 걸려 망할 것 같아 며칠이라도 살고자 집권당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냐” 이었다. 무능한 당보다는 부패한 당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 정말 무기력해진다.
세월호를 인양하지 않고는 국민 마음이 바다 속의 세월호에서 벗어나기 어려워 보인다. 다행히 세월호 인양을 하기로 한 정부의 결정에 위안을 받는다. 지난 주일에 과거의 특이한 사건을 재조명하는 TV방송에서 서유럽을 비행하던 비행기가 관제사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화물항공과 공중에서 충돌하여 승객 모두가 사망한 사건을 소개하였다. 당시 관제사가 속한 스위스 정부는 관제사의 실수를 단순 업무상 실수로 간주하고 처벌하지 않았다. 심지어 관제사는 1년 후 추모회에도 참석하지 않고 본인은 죄가 없다는 것만을 주장했다고 한다. 그런데 2년 후에 사고로 부인과 두 자녀를 잃은 한 사람이 관제사 집을 방문하여 사과를 요구하였으나 사과를 하지 않자 관제사를 살해하고 만다. 관제사를 죽인 사람은 살인죄를 스스로 인정해 항소심도 포기하고 법의 집행은 받으면서 살해의 이유를 본인이 원한 것은 관제사의 진심어린 사과에서 위로받고 싶었다는 심정을 토로하였다.
사랑하는 가족이 죽음에서 돌아올 수는 없지만 남아있는 가족은 사고에 책임이 있는 사람과 제도와 국민으로부터 진정어린 위로는 받아야 한다. 이는 돈으로 해결하는 문제가 아니다. 위로가, 사과가 없다면 그들이 또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플라톤이 국가를 집필하던 시기의 아테네는 현재 우리나라보다 더 암담한 상황이었다. 그러한 암담한 현실에서도 한탄만 하지 않고 긍정적 해결책을 위하여 거대한 담론을 집필한 철학자에서 존경심을 보낸다. 우리나라 정치인에게 플라톤의 수호자를 기대해 보는 것은 무리일까? 본인과 정당의 코앞 이익보다는 국민을 위한, 세계를 위한 철학에 기초한 결정을 내리는 정치인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진정한 수호자인 정치인에게 힘을 보탤 줄 아는 국민을 기대해 보는 것은 무리일까? 힘없는 국민은 믿어보고 싶다.
이성은 전 가톨릭관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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