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춘추전국시대 제(齊)나라 환공(桓公)은 관중(管仲)이 병들자 찾아가 장차 어찌해야 되는지를 물었다. 그때 관중은 “수조(竪) 역아(易牙) 개방(開方)은 인정이 없으니 가까이 하셔서는 안 됩니다.”라고 대답 하였다.
수조는 환공이 여자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스스로 거세하여 환관이 된 뒤 궁중의 여자들을 관장하여 총애를 얻은 사람이었는데, 스스로의 몸을 아끼지 않는 것은 인정이 없어서라는 것이다. 역아는 환공에게 맛보지 않은 새로운 요리를 올리기 위해 자기 자식의 머릿고기를 올릴 정도로 총애를 얻은 요리사였는데, 자기 자식을 아끼지 않는 것은 인정이 없어서라는 것이다. 개방은 위(衛)나라 공자로 제나라에 와서 환공을 모시고 있었는데 며칠거리에 있는 노모를 15년 동안 버려두고 찾아보지 않는 것은 인정이 없어서라는 것이다. 자기 몸보다 임금을 더 사랑하고, 자기 자식보다 임금을 더 사랑하며, 자기 부모보다 임금을 더 사랑하는 이들에 대해 관중은 그들의 충성 속에 감추어진 삿됨을 간파하고 그들을 멀리하라 간언 했던 것이다. 그러나 환공은 관중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관중 사후 수조 역아 개방은 권력을 장악하여 농단함으로써 제나라의 국운은 쇠하게 된다. 환공은 자신이 믿던 총신들에 의해 굶겨져 죽고, 제나라는 혼란에 빠져 패자의 지위를 잃게 된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인정이 없다[非人情]’는 말은 ‘인정과 등졌다’는 말의 뜻도 된다. 곧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사람다운 감정이 없다는 말이고, 사람다운 감정과 반대되는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관중은 바로 이 상식적인 면을 통해 그 사람이 바른지 삿된지를 판단해 내고 있다. 관중의 사람 판단 기준으로 보면, 누가 원한다면 내 자식까지 죽여서라도 그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겠다거나, 누군가의 기쁨이 내 몸보다 소중하다거나, 내 부모보다 직장의 일이 더 중요하다고 하는 자들이나 혹은 그렇게 살고 있는 자들은 다 삿된 사람 군에 속한다.
삿된 자들은 권력과 돈과 명예를 얻기 위해 충직과 충성과 박애의 탈을 쓰고 끊임없이 세상을 속이려 들고, 환공이 그랬던 것처럼 그런 그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들을 인정하고 그들을 총애한다. 이런 흐름이 몇 천 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인간세상의 모습이라 할 때 관중의 간언은 시대를 넘어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귀 기울여 들을 충언이다.
 그처럼 명철했던 관중도 북송의 소순(蘇洵)에게 질타를 받았다. 사람들을 잘 파악하는 재주는 있었지만 자신을 능가하는 사람을 발탁하여 천거하지 못하고 죽은 것에 대한 질타이다. 환공이 재상을 발탁하고 싶어 관중에게 물었을 때, “포숙(鮑叔)은 사람됨이 곧은 것을 좋아하나 능히 국가를 부강하게 하진 못하고, 빈서(賓胥)와 무지(無之)는 사람됨이 선을 좋아하나 다른 나라를 굴복시키진 못합니다.”라고 대답했다는 것을 보면 사람들을 잘 파악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런 안목으로 왜 현인을 발탁해 내지 못했느냐는 것이 소순의 질타이다.  소순의 주장은 관중이 제나라를 진정으로 걱정 했다면 수조 역아 개방을 가까이 하지 말라는 간언을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사악함이 세상에 발하지 못하게 만들었어야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관중 자신을 능가하는 인물의 천거를 통해 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으니 그 뒤 제나라의 혼란은 관중이 만든 거라는 논리다. 소순의 주장대로 볼 때 관중은 큰 실책을 범하고 죽었다. 스스로의 재능만 뽐내다 죽은 것이지 나라와 백성들을 진정으로 사랑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순은 “현명한 자는 자신이 죽는 것을 슬퍼하지 않고 자기나라가 쇠해질까를 걱정한다. 그래서 반드시 현명한 자를 발탁해 놓은 뒤에 죽는다”고 하였다. 소순의 잣대로 관중을 본다면 결국은 인정이 없는 사람이었던 셈이다. 환공을 진심으로 보필하고 백성들을 진정으로 사랑했다면 훌륭한 인재를 천거하여 자신의 사후에 더욱 더 살기 좋은 사회가 되도록 했어야 하는데 이를 실천하지 못했으니 이것은 인정을 등진 것이 된다.
 인생을 실패하지 않으려면 곁에 인정 없는 사람과 함께 있지 않나 살펴 볼 일이다. 수조와 역아, 개방처럼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인정 없는 삶을 살아서도 안 되겠지만 관중처럼 자신의 능력만 뽐내다 현인을 천거하지 못하고 가는 삶을 살아서도 안 될 것 같다. 인정 없는 사람들 속에서 인정을 가지고 사는 것이 순탄치 만은 않을지라도 인정 있는 사람으로 살고 싶은 것이 필자만의 바람은 아닐 것이다.  거짓의 난무 속에 진심이 전해지기 어려운 시대, 단 한 사람일지라도 진심이 통하는 사람이 있다면 행복할 것이다.
김백호 회산서당 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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