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강사하며 노래 부르는 김영훈씨

▲ 장애인밴드 ‘소울’의 김영훈 보컬, 그는 1급 시각장애를 안고 살고 있다. 하지만 김씨는 “조금 다른 길로 돌아왔다”고 말한다. 그에게 장애는 불편일 뿐이다.
24살에 찾아온 시각장애
“어차피 살 거 열심히 살자”
기타 배우고 밴드 결성

고양시 장애인들에게는 이미 수퍼스타인 김영훈(30세)씨는 시각장애인밴드 ‘소울’의 보컬이자 시각장애인들에게 컴퓨터 사용법을 알려주고 컴퓨터 고장이 있을 때는 직접 찾아가 도와주는 컴퓨터 강사다. 그런 그의 인생이 불행으로 가득 찼던 시간이 있었다. 그가 시각장애인이 된 직후다.

“100원을 떨어뜨리면 어디로 굴러가는지 소리를 듣고 찾지만 결국 못 찾는다. 그런데 500원이 떨어지면 손이 시커메질 때까지 찾아내고 만다. 내가 화가 날 때는 그 500원을 찾으려고 바닥을 뒤지는 내 자신을 발견할 때다.”

군 생활 중 갑자기 찾아온 장애
컴퓨터 프로그래머를 꿈꾸던 24살의 대학생 김씨에게 어느날 장애가 찾아왔다. 대학에서 컴퓨터를 전공하며 꿈을 키워가던 그는 2006년 군에 입대했다. 군 생활 중 갑자기 눈에 이상이 왔음을 느꼈다. 시야의 한가운데가 하얗게 보이기 시작했다. “당황스러웠다. 상관이 일단 집으로 가 검사를 해보라고 해서 집으로 향했다. 용산역에 도착했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무작정 사람들을 따라 걸었다. 어머니를 찾는데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멀리서 어머니가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병원에 도착해 검사를 받은 후 1급 장애판정을 받았다. 어머니가 펑펑 우셨다.”

의사는 그가 시력을 잃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치료방법도 없었다. 그의 어머니도 시각장애가 있어 그가 어릴 때 검사를 했는데 그때만 해도 장애가 없었다. 그 때문에 그의 가족들에게는 충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가족은 마음의 장애 얻어
의가사제대 후 집으로 온 그는 1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자신의 방에 머물렀다. 그는 “우울증이 심했다. 낮이나 밤이나 불도 켜기 싫었다. 왜 나인가. 어떤 잘못을 해서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지 끊임없이 되물었다”고 말했다. 우울증에 죽음까지 결심했었다. “내 기억들이 모두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오싹함을 느꼈다. 하지만 어차피 살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하면서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1년 반 동안 자르지 않았던 머리는 지금 로커 김영훈씨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그는 “장애인이 된다는 것은 나 혼자 장애인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가족이 전부 장애인이 된다. 가족들에게는 마음의 장애가 생기게 된다. 시각장애인은 안 보이기 때문에 궁금한 것이 정말 많다. 계속 설명해달라고 물어보고 그것 때문에 가족들도 힘들었을 것이다”라고 회상했다.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한 기타
그가 방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세상과 그의 연결고리는 라디오였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그에게 라디오는 친구와도 같았다. 여러 프로그램에 사연도 보내고 그 사연이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올 때 자신이 이 세상에 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누군가 내 존재를 알고 있음을 느꼈다”는 게 그의 말이다. 모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진행하는 기타강습 이벤트에 당첨된 그는 1년 반 동안의 방 안 생활을 정리하고 세상으로 박차고 나왔다.

“기타를 배우러 나가는 날이 기억난다. 처음으로 스스로 나가고 싶었던 날이다. 날씨가 아주 화창했다. 안 보이는 부분이 더 환하게 보여서 눈이 많이 부셨다. 그날 하늘이 그렇게 밝아 보일 수 없었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그는 기타를 시작하면서 마음의 장애가 조금씩 사라져갔다. 2008년에는 고양시각장애인협회에서 ‘장애극복상’을 받았다. 2012년에는 시각장애인 동료들과 밴드 ‘소울’을 결성했다. 장애인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선곡하고 무대 위에서 최선을 다한다.

공연 통해 나누는 교감이 큰 힘
무대 밖에서는 어디라도 찾아가 시각장애인들에게 컴퓨터 이용방법을 알려준다. 고양시 장애인 보행환경 개선 운동에도 앞장섰다. 자신의 행동에 의해 정책이 바뀌고 개선되는 것을 확인한 그는 자신감이 더 생겼고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원동력도 생겼다고 한다.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그는 “공연을 보러온 장애인들과 악수하고 함께 기뻐하고 같은 곳에서 서로 옆에 있음을 확인하는 것, 그런 교감들이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요즘 그는 장애는 불편일 뿐이라고 말한다. “어릴때는 넥타이 안 매고 컴퓨터를 하는 것이 꿈이었는데 지금 돌아보면 이미 꿈을 이룬 것이 아닌가 싶다. 다른 길로 돌아왔지만 또 다른 행복을 찾았다. 지금와서 돌아보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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