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들이 모여서 나누는 얘기는 대부분 걱정거리이다. 국제 정세를 걱정할 만큼 통이 큰 사람들도 많지 않기에, 서민들이 나누는 대부분의 걱정거리는 나라 걱정이다. 대통령과 청와대에 대한 걱정, 여당과 야당에 대한 걱정 등 정치적 불만과 우려를 표현하는 사람들이 많다. 노후 대책이나 청년 실업과 같은 경제적 걱정도 많이 한다.
그러나 누구도 뾰족한 대안을 내놓지 못한다. 지금 대통령이 마음에 안들지만, 차기 대통령 감으로 봐줄 만한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여당이 잘못한다지만 야당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경제적 걱정거리에는 더욱 해결책이 보이질 않는다. 형편이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고, 노인이나 청년이나 앞으로 살아가기가 더욱 팍팍해질 것이 분명하다.
그나마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있다. 정치인들이다. 그러나 국민들의 걱정거리를 해결하기는커녕 그들 자체가 걱정거리가 되고 있는 현실이다. 늘 그랬듯이 여당과 야당 모두 집안 싸움하느라 바쁜 탓이다. 공무원 연금 개혁을 둘러싸고 여당 내에선 새누리당 지도부와 청와대 간 벌어진 간격이 확연히 드러났다. 야당의 경우는 소위 친노측과 호남측이 갈라서기 일보 직전까지 이르렀다. 정당 정치가 주기적으로 내분에 휩싸이고, 그로 인해 국가적 과제가 외면당하고, 그로 인해 국민들이 시름하는 이유가 한 가지 있다. 지역정치가 민주화되지 못한 탓이다.
군사독재 이후 전국적 차원에서는 정당을 통한 민주정치 체제가 자리를 잡았지만, 지역적으로는 여전히 봉건적 맹주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황이다. 정당대표는 쉽게 바뀌지만 지역의 보스체제는 여전하다. 다만 과거 3김과 같은 거물급 보스가 아직 나타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대신 지역의 맹주 자리를 두고 암투가 치열하다. 이완구 전 총리를 부상케 했던 소위 충청권 대망론도 그러한 봉건적 지역정치의 일면을 보여주었다. 홍준표, 안희정, 남경필, 원희룡 등 중앙정치에 몸담았던 사람들이 고향이라고 돌아가서 도지사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장차 대권후보의 반열에 오르려는 욕심도 있겠지만, 해당 지역의 정치적 보스로 군림하며 권력을 휘두르겠다는 계산이다. 봉건적 지역정치는 국가적으로 정착된 정당정치의 민주적 기능을 마비시키고 있다. 정치인들이 국민보다는 자기가 소속한 정당 계파 보스의 눈치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계파보스들이 공천권을 쥐고 있는 현실에서 정치인들에게는 유권자의 투표보다 공천권이 더 중요하다. 영호남과 같이 지역별 정당 선호도가 뚜렷하게 차이가 나는 곳에서 공천권이 당선권이나 마찬가지이다. 정당 선호도가 유동적인 충청권이나 수도권 지역에서는 정당 공천이 당선을 보장하지는 못하지만, 공천을 받지 못하면 당선가능성에서는 멀어진다. 한국의 정치인들은 국민의 걱정거리를 해결하는데 보다는 공천을 받는데 모든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정치구조이다.
정치인들이 국민의 걱정거리를 헤아리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나라를 만들려면 지역정치가 달라져야 한다. 봉건적 지역정치를 민주적 지역정치로 바꾸어야 한다. 공천권을 중앙당에서 행사하지 말고 지역에서 행사해야 하는 것이다.
중앙에 잘 보인 사람이 지역에서 공천되는 정치가 아니라 지역주민에게 잘 보인 사람이 지역에서 공천되는 정치로 변해야 하는 것이다. 정당 지도부는 공천에는 관여하지 않고 유권자에게 약속한 공약을 실천하기 위한 원내전략에만 집중해야 한다. 그러면 나랏일이 제대로 다뤄질 것이고, 나랏일 제쳐두고 집안싸움에만 몰두하는 정치인들도 줄어들 것이다. 나라 걱정으로 한숨짓는 국민들 역시 줄어들 것이다.
장호순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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