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토털기업 ‘체리쉬’ 유준식 회장, 유경호 부사장

▲ 유준식(왼쪽) 회장의 거침없는 행보에 가끔 ‘태클’을 거는 게 유경호 부사장의 역할이다.
고가 가구 온라인 판매 돌풍
아들 온라인관리 등 가족경영
기업철학부터 비전까지 공유

고양시의 대표기업 ‘체리쉬’(회장 유준식)는 맞춤형 리빙 솔루션을 제공하는 디자인회사다. 2004년 5월, 향동동 60평짜리 가건물에서 세 식구와 직원 한 명으로 시작한 체리쉬는 당시 가구업계의 일반적인 마케팅 방식과 달리 고가의 가구를 온라인에서 판매하면서 동종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낮시간에 매장을 방문하기 힘든 맞벌이부부나 직장인들이 체리쉬를 찾았고, 원산지를 공개하고 고객 편의 중심으로 운영하는 게 입소문 나면서 홈페이지 개설 6개월 만에 가구업체 홈페이지 중 방문자수 1위를 차지했다. 온라인에서의 이런 신뢰를 바탕으로 백화점과 로드숍을 확대해 현재 직영점만 7개다.

가족과 가구업으로 재기 성공
유준식 회장은 잠시 정치에 발을 들였다가 가세가 기울었다. 재기를 위해 가족이 찾은 꿈은 가구였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구를 만든다’는 목표로 유 회장은 영업을, 아내는 재무를, 아들은 온라인을 맡아 밤을 낮 삼아 달렸다. 그 결과 모범 경제인 대통령상(2011년)을 비롯한 각종 수상과 인증을 받으며 탄탄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유 회장은 “체리쉬의 성공은 가족경영이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한다. 당시 25살 대학생이었던 유경호 사장은 온라인 관리를 맡고 매출을 체크했다. 유 사장은 대일외고를 졸업하고 고려대 기계공학과에 재학 중인 공학도였다.

유 사장은 “아버지가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가구업에서 비전을 못 보셨기 때문”이라며 “디자인 중심의 가구는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사업에 함께했다”고 말한다. 가세를 일으킨 후 손 뗀다는 계획이었지만 어느새 11년째 가구사업을 하고 있다. 가구업을 ‘장사’가 아니라 ‘사업’으로 키워보겠다는 포부도 있다.

100년 기업 내다보고 뮤지엄
유 회장은 대한민국 가구업계에 쇼룸다운 쇼룸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에 창업 7년차에 체리쉬 뮤지엄을 짓기 시작했다. 군부대 앞이라 증·개축은 물론, 매각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100년 기업이 되겠다는 목표가 없었다면 추진할 수 없는 일이었다. 유 사장은 가족기업이기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당기순이익으로 실적을 증명해보여야 하는 전문경영인이었다면 현재의 위치에 사옥과 뮤지엄을 짓지 않았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유럽 명품 브랜드는 가족기업이 많아요. 가족이라 철학을 공유하고, 당장의 수익보다는 브랜드 가치를 키우는 데 투자할 수 있기 때문이죠.”

유 사장은 CEO의 독단과 독선을 막는 데도 가족이 유리하다고 말한다. 유 회장의 거침없는 행보에 가끔 ‘태클’을 거는 게 유 사장의 역할이다. 부자가 한 집에 살고 있어 대화 시간도 많다. 주로 회사 경영방침이나 규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사업을 구상하고 체리쉬의 비전도 만들어간다.

CEO 독선에 ‘태클’걸어주는 아들
해외 가구박람회에 가장 일찍 등장해 가장 늦게 퇴장하는 유 회장 부부와 유 사장. 일찌감치 중국 진출을 염두에 두고 중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중국시장을 연구 중인 작은 아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구’를 만들기 위해 뭉친 가족이다. 체리쉬는 최근 중국에 유한공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유 사장은 “체리쉬의 가구는 ‘컨템퍼러리 모던’으로 현대적 느낌의 리빙, 혁신적 가치를 지향한다”며 “한국적 디자인을 찾기 위해 이상봉 디자이너와 협업도 하고, 신진디자이너 네트워크인 아르떼와 손잡고 이탈리아에서 세일즈를 돕기도 한다”고 말한다.

그는 디자이너와 제작, 원가관리 등을 네트워킹해야 한국을 대표하는 리빙회사가 될 것이라 믿고 있으며 디자이너들의 길을 열어주거나 판매에 관한 노하우를 전달하는 게 보람이라고 덧붙였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즐기는 유준식 회장,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젊은 감각의 유경호 사장, 체리쉬의 새로운 도전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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