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듯 닮은 우리 부부 이야기 한동욱·이은정 부부

웬만한 바람에는 흔들리지 않을 나무를 닮은 남자, 소박한 솔나리꽃을 닮은 여자. 한동욱(47세), 이은정(45세) 부부는 호수자연생태학교를 연 주인공이다. 특히 한동욱씨는 ‘장항습지’라는 이름을 짓고, 국가습지 목록에 올린 습지생태전문가다.

지금도 남편 보면 가슴이 떨려요

▲ 생태감성이 통하는 ‘짝’임을 한눈에 알아본 한동욱·이은정 부부. 두 사람은 생태적 삶을 함께 꿈꾸는 동지이기도 하다.
이 부부는 1995년 4월 22일 ‘지구의 날’에 운명처럼 만나 수목원과 식물원에서 풀꽃과 나무를 접하며 사랑을 키워갔다.

“친구 소개로 처음 만난 날, 이 사람이 꽃에 대한 감수성이 있다는 걸 알았죠. 당산역을 지나면서 수수꽃다리를 알려줬는데 꽃을 대하는 이 사람의 자세를 보고 바로 느꼈어요.”

남편 한씨는 아직도 처음 만났던 날의 아내 모습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수수한 모습이 참 예뻤어요. 수수꽃다리 향기를 맡는 이 사람에게서 향기가 나는 듯했죠. 요즘 말로 심쿵!”
아내는 또 어떤가. “그날따라 버스가 막혀서 2시간 늦었어요. 당연히 가버렸을 줄 알았는데 기다리고 있더라구요. 미안하다고 하니까 ‘오랜만에 혼자 있을 시간을 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거예요. 그때 테이블 위에 손을 얹고 있었는데…, 손이 참 예뻐보였어요.”

20년 전 이야기를 풀어내는 이들 부부의 눈빛에서 하트가 튀어나오는 듯하다. 아직도 서로를 보면 가슴이 떨린다는 이 부부, 닭살이다.

당시 이씨는 대안학교 준비모임 활동을 하며 식물을 주제로 수업을 구상하고 있었는데 식물전공 남자친구가 생겨 ‘독선생’을 모시고 식물원과 수목원을 다니며 식물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아내는 내가 냉이와 꽃다지를 처음으로 가르쳐준 학생”이라는 표현이 무색하게도 이씨는 이제 식물분류 전문가로 전국을 누비고 있다.

조건 중요치 않았던 남자와 여자
사실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소개팅 자리에서 만났다. 무엇을 전공했는지, 뭐 하는 사람인지, 그런 게 궁금하지도 않았다. 만남을 거듭하면서 조각그림 맞추듯 서로를 알아갔다. 두 사람 성격이 그렇다.
한씨는 대학에서 생태학을 전공하고 한의학을 공부하기 위해 중국유학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생태적 감성이 통하는 ‘짝’을 만나 유학을 접고 국내 대학에 진학했다. 이듬해 둘은 결혼을 했다.

“이이가 3년만 고생하면 평생 편히 살게 해주겠다고 해서 그 말만 믿었는데 그 공부가 10년이나 갈 줄은 몰랐죠.”

아내는 글쓰기 수업을 하며 남편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했다. 두 사람 다 소비적인 성향이 아니라 월 5만원의 식비면 충분했다. 덕분에 ‘콩나물로 할 수 있는 요리 50선’ 정도는 문제없다고. 아내는 열심히 사는 게 즐거웠고 한 번도 뒷바라지 한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고 한다. 남편은 경희대 4년 공부를 마치고 다시 서울대 대학원에 진학해 습지생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10년간 공부에 빠져 지냈다.

호수공원에 생태교육의 씨앗 심어
식물과 생태에 관심 많은 이 부부의 발길이 호수공원으로 향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98년 일산으로 이사하고 나서 호수공원에 자생식물 120종이 심어져 있다는 소식에 매일 모니터링을 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매일같이 쭈그리고 앉아 호수와 풀을 들여다보고 있으니까 공원관리과 공무원이 ‘여기서 무얼 하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부부는 입을 모아 ‘당연히 어린이교육을 해야한다’고 답했다. 담당 계장은 어떻게든 예산을 마련해보겠으니 한번 해보자고 그랬다. 그렇게 98년 7월 30일 제1회 호수자연생태학교가 열렸다.

초창기 뜨거운 호응에 힘입어 한국어린이식물연구회(어식연)를 만들었고 2002년 사단법인으로 발족했다. 참교육학부모회 등 학부모 모임에서 생태교육에 뜻이 있던 사람들이 힘을 보탰다.

어식연 활동을 하면서 이 부부는 생태마을공동체를 꿈꾸기 시작했다. ‘사람과 자연이 일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생태마을’, 이 꿈을 위해 대장동으로 이사하고 대곡초등학교를 중심으로 대장동 주민들과 생태마을을 만들어갔다. “혁신교육을 학교와 함께 만들고, 이웃과 아이들의 공동육아를 고민하고, 생명운동으로 공동텃밭을 가꾸는 마을을 만들고자 했다”는 설명이다.

어식연으로 활동하다가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간 활동가들과 자연생태교육 네트워크를 만들자는 취지로 2012년에는 법인 이름을 ‘에코코리아’로 바꿨다. 이 모든 활동을 부부가 함께 의논하고 실천하며 일궈왔다.

 

갑작스런 주말부부 신세
97년 5월 1일 노동절에 결혼해 한 번도 떨어져 지낸 적이 없던 부부가 얼마 전 주말부부가 됐다. 남편이 2013년 10월말 국립생태원 기초생태연구 본부장으로 발령이 난 것이다.

“이 사람이 중국 출장 갔다오자마자 금요일에 출근하라는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짐을 싸서 일요일에 내려가 월요일에 출근을 한 거예요. 정신없이 짐 챙겨서 남편을 보내고 나니까 그제야 실감이 나서 하루 종일 울었어요.”
남편을 보면 아직도 가슴이 떨린다는 아내는 일주일 내내 남편을 기다린다. 남편도 주중에는 생태원 업무로 바쁘지만 집에 돌아와 가족과 함께 보내는 주말이 기다려지는 마찬가지다. 일과 생활이 얽혀 있는 삶을 살아왔기에 부부는 가장 이야기가 잘 통하는 사람이다. 주말이면 아이랑 셋이서 1주일치 이야기를 풀어내느라 바쁘다.
남편은 에코코리아가 맡았던 사회적 책임을 아내에게 오롯이 맡긴 것이 미안하다. 아내는 98년부터 함께 일궈왔던 호수자연생태학교가 올해로 17년차에 들어가는 시점인데 시가 시민단체를 배제하는 바람에 에코코리아가 손을 떼게 돼 많이 아쉽고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같아 미안한 마음도 갖고 있다.

그래도 ‘물 흐르는 대로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것’을 믿으며 이 부부는 오늘도 전국의 산과 들, 습지와 섬을 다니며 식생을 조사하고 기록하면서 생태적 삶을 꿈꾸고 있다.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