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에 사는 임신부가 친정인 강원도로 피난을 간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14세기에 쓰여진 복카치오의 '데카메론'이 생각났다. OECD 일원국인 우리나라에서 2015년에 나타난 이 상황이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국민으로서 또 보건의료인으로서 학문적 사회적 자부심이 모두 무너지는 느낌이다.

2010년에 질병관리본부의 ‘동아시아 3개국의 2009년 신종독감 범유행시 일차보건의료에서 대응 전략’ 용역 연구를 수행하면서 우리나라의 신종감염 대응 능력의 문제점을 정리해 볼 기회가 있었다. 이번 메르스 초기 대응의 실패는 2009년 신종독감 대유행에서 보여준 정부의 무능함과 관심 없음에서 이미 예측된 결과이다. 다만 메르스가 신종독감에 비해 치명률이 높기 때문에 국내외 사회적으로 문제와 혼란을 초래한 것이다.

이번 메르스 사태는 대통령과 보건복지부가 신종 감염병의 사회문화적 특성을 이해 못한 결과이다. 건강문제의 감시체계구축을 영어로 ‘surveillance’라고 하는데 이 용어는 원래 프랑스에서 범죄 감시를 칭하는 용어이다. 신종 감염병의 대응 전략이 흉악 범죄에 대한 대처와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흉악 범죄가 발생하면 범죄가 발생한 지역과 범죄의 특성을 국민에게 알려서 유사 범죄의 발생을 예방하고 범죄피해자를 치료하고 보호하는 것처럼 신종 감염병의 대응책이 이뤄져야 한다. 

우리나라의 사회문화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외국 자료에 기초로 한 대처가 특히 의학적 기준에만 의존한 대처가 메르스 사태를 만들었다. 의학은 학문의 특성상 치료 중심이어서 사회문화적 대처가 필요한 감염병 대응책을 수립 할 수 없다. 메르스 같은 신종감염의 대응 전략은 의학만으로는 안 된다. 신종 감염병의 예방과 관리는 범죄 발생을 예방하고 관리하는 것과 같이 사회문화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번 사태에 적극적으로 대처한 교육부의 대응을 보건복지부의 관계자가 ‘의학적으로 옳지 않다’고 비난하였는데 이 비난은 보건복지부가 받아야 했다. 메르스가 사회 경제 문화적 건강문제인 것을 보건복지부만 몰랐던 것이다.

신종 감염병의 대응은 국민과 함께 헤쳐나가야 하는 건강문제이다. 그런데 정부가 국민의 협조를 구하지 않아 더 큰 문제를 일으켰다. 국민의 협조를 구하는 것은 정보를 공유하고 국민의 책임과 의무를 강조하는 것이다. 2009년에도 우리나라에서 학교 교사가 등교하는 학생의 체온을 일일이 측정한 것에 대해 공동연구자인 대만과 일본 학자가 한국 가정에는 체온계가 없느냐고 질문하기도 했다. 체온은 당연히 가정에서 측정해 체온이 오르면 스스로 격리하는 국민 성숙된 자발적 참여 유도가 없었던 것이다. 또한 이번 메르스 사태는 몇 병원과 감염자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미명 하에 비밀주의를 고수해 문제를 확대시켰고 국제적 망신을 자초했다.

2009년 신종독감의 대유행 때 정부 대처의 지지부진함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2003년 사스 대응 지침을 따라서 하기만 하면 되는데 왜 혼돈을 초래하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되었다. 대중매체가 전하는 2003년 사스와 2015년 메르스 정부 대응의 비교 기사를 접하면서 대통령의 철학에 따라 정치권의 세력 다툼에 의해 신종 감염병 관리의 성패가 좌우된다는 사실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 기가 막혔다. 그도 모자라서 적극적으로 대응 한 서울시장을 비난하는 정치계는 너무하다, 내가 낸 세금으로 정말 너무들 한다.

이성은
관동대 간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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