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IMF 직전 마지막 신협 인가
행당동 철거민들 경제발판 위해 출발
성동주민회 모태, 지역공동체 가치실현
중국집 협동조합, 생협에 출자, 지역기금도

▲ 논골신협 유영우 이사장
▲ 논골신협 창구
자고 일어나면 건물이 올라가고, 분양 차양만 내걸면 치열한 경쟁률을 자랑하던 시절. 택지개발 예정지에 살고 있던 철거민들은 살던 집을 쫓겨나거나 철거반대싸움을 벌였다. 80년대 서울 행당동도 유명한 철거싸움 지역이었다.

금호 행당 하왕십리 6개 개발지역 주민조직인 세입자 대책위원회가 중심이 돼 공동체가 만들어졌다. 가난한 이들이 만든 새로운 공동체는  금융 신협과 생활협동조합, 장학회 등 다양한 사업으로 영역을 확대해왔다. 서울 한가운데 자리한 논골신협은 이 지역 주민공동체 운동의 구심으로 10여년 동안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논골신협은 단순히 금융기관이 아니라 지역주민 운동차원에서 지역사회와 함께 한다. 그것이 논골신협이 만들어지고 존재하는 이유다.” 논골신협 유영우 이사장의 이야기다. IMF 직전 국내에서는 마지막으로 신협 인가를 받은 논골신협.

3년 동안 매일 걷어 3억 출자
가수용시설 입주 후 6개 지역 주민들이 각 마을마다 출자위원들을 선정해 3년 동안 매일 소액 출자금을 걷었다. 그렇게 3억 출자금, 3000명의 조합원이 모였다. 1996년 8월 발기인 총회를 열고, 1997년 8월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같은 해 11월 28일 설립 인가를 재정경제부로부터 받았다. 논골신협은 당시 송학마을 임시 거주시설 주민회관 안에 작은 책상을 놓고 업무를 시작했다. 처음 시작할 때 직원 한명에서 지금은 5명이 일하고 있다. 2007년에는 도로변 건물은 인수해 이전했다. 자체 건물이 생기면서 기존 조합원 이외 지역 주민들의 신뢰가 늘었다. 조합원은 꾸준히 늘어 2012년 기준 자산 250억, 조합원이 4000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논골신협은 성장 자체도 고민이다. 신규 조합원들은 논골신협을 가까운 곳에 있는 은행으로 이해한다. “신규 조합원들은 무조건 교육을 받아야 가입이 가능하다. 현재는 사실 교육을 감당하기 어려울만큼 조합원이 늘어나고 있다. 일주일 단위로 조합원들을 모아서 교육시키거나 홍보물을 보도록 하고 있지만 쉽지는 않다.”
유영우 이사장은 ‘참 조합원’을 거듭 강조했다. ‘스스로 신협의 주인의식을 갖는’ 이들을 말한다. 무조건 조합원이 늘어나는 것은 “신협의 정체성에도 맞지 않고, 모래위의 성”이라고 설명했다.

▲ 옛 행당동 철거현장. 아파트가 들어섰다.
공동체 의식이 있는 ‘참조합원’
주인의식을 갖는 조합원을 만들기 위해 지역접촉점을 늘리는 일. 논골신협은 자신의 존재근거라 여기는 지역사회 협력을 계속해왔다. 성동두레생협, 성동주민회, 성동주민자치소통센터, 협동사회경제추진단, 평화의집, 주거복지센터, 논골두레장학회, 논골기금, 건강마을, 청소년활동, 하늘나무 사랑방, 논골주민문화 한마당. 이들 다양한 주민우동 영역을 적극 지원하고 함께 했다. 사실 공동체를 들여다보면 이들이 모두 한몸,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성동주민회 장동성 대표는 논골신협 과장이면서 성동두레생협 이사. 중국집 협동조합 블랙앤압구정 채혁 대표 역시 성동생협 감사이자 신협 이사. 뭐 이런 식이다.

노동자 생산협동조합, 성동두레생협, 하늘나무사랑방(주민모임 장소)에는 직접 출자를 하기도 했다. 지역발전기금인 논골기금, 두레장학회, 성동협동기금을 통한 지역사회 기부도 중요 사업이다. 논골기금은 재정적 지원과 대출을 하고, 의사결정구조에도 참여한다. 협동조합 법 이후 만든 성동협동기금은 성동구가 1억원을 지원해서 출발했다. 논골신협의 모태라 할 수 있는 성동주민회와 평화의 집, 공부방 등에는 직접 운영비도 지원한다. 

▲ 성동두레생협
지역의 변화 신협이 주도할 수 있다
지역의 어려운 이들이 서로를 돕기 위해 만든 논골신협. 그러나 특화된 금융상품은 따로 없다. 장학적금 정도. 생활자금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서는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 한도내’에서 대출을 해준다. 신용 평가는 어떻게 할까?

“신협의 출발이 신용을 담보로 하는 것 아닌가? 서로 어느 집 숟가락 몇 개인지 아는 사람들이 조합원으로 출발했다. 물론 그동안 사회도 많이 변했고, 공동체성 유지하는 것이 어렵게 되기도 했다. 그런 경우에는 기존 금융기관 시스템에 따라 신용조회를 한다.

거듭된 은행의 위기는 신협이나 새마을금고 등 제2금융권의 직격타가 됐다. 전국 신협들 대다수가 위기 상황. 유영우 이사장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신협의 정체성을 회복해야한다. 전국 신협 조직 중 주인의식을 가진 참 조합원을 확대하고 지역의 밀착된 관계 금융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해야한다”고 말했다.
사진=충청리뷰 육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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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집협동조합 블랙앤압구정
<중국집협동조합 블랙앤압구정>
 ‘철가방’들이 '주인장‘되던 날

잘나가는 중국집. 배달이 밀려서 배달원을 구하기 어려울 정도였던 블랙앤압구정. 갑자기 사장이 직원들을 불러 ‘같이 주인을 하자. 나는 10%만 가질테니 나머지 지분을 나누자’는 제안을 했다. 처음 직원들은 반신반의. 신뢰하지 않았다.

“제안을 받은 직원 몇 명이 논골신협에서 대출을 받아 출자를 했어요. 한달 후에 월급과 배당을 함께 받는 걸 본 직원들이 믿기 시작했죠.”

조합원 자격은 3년 근무자로 제한했다. 배달원, 주방장, 홀 직원도 모두 주인이 됐다. 블랙앤압구정은 현재 17명 조합원에 4호점까지 문을 열었다. 배달원 급여가 웬만한 대기업 신입 월급 수준.

평범한 중국집 사장이었던 채혁 대표는 논골신협의 일본연수에 참여했다가 ‘세상이 바뀌는’ 경험을 했다. “그냥 놀라자고 해서 갔어요. 일본 오사카 마을 견학을 갔는데 거기서 협동조합을 알게 됐죠. 청년, 주민들이 협동의 가치를 배우고 지역으로 돌아와 마을을 살리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불안정한 중국집 배달원 일을 하는 이들은 대부분 열악한 환경의 젊은이들이 많다. 그 역시 젊은 시절 어려움을 겪어본 터. 조합원이 되면서 직원들은 더 이상 직장을 옮겨다니지 않는다. 주인의식을 갖고 일을 하니 서비스도 다르고 매출도 올랐다. 

“김현미 국회의원님도 왔었어요. 사흘이나 와서 제 이야기 듣고 책도 쓰셨는데.” 채혁 대표는 고양시에서 왔다는 이야기에 김현미 국회의원과의 인연을 자랑하기도 했다. 논골신협을 만나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채 대표. 공동체를 만나며 변화하는 사람들이 바로 지역사회의 희망이다.

▲ 블랙앤압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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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논골신협 유영우 이사장
“협동조합 인정해야 위기극복 가능”

▲ 유영우 이사장
3년 동안 매일 1000, 2000원씩 걷어서 3억원을 만들었다. 당시 신협 인가 조건이 3억원 출자금에 300명 조합원이 필요했기 때문. 사채업자들 일수 걷듯이 수기 통장에 직접 도장 찍어주고 돈을 받았단다. 논골신협을 만든 유영우 이사장은 신협을 만들던 당시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처음 250가구가 모였다. 3년이 더 걸릴 줄 알았는데. 가이주단지에 모여서 살 때니까 가능했다. 철거싸움하면서 만들어진 공동체성이 살아있을 때니까.” 빈민 운동, 철거싸움을 통해 만들어진 공동체가 가장 먼저 금융을 선택한 이유를 물었다.

“대부분의 도시빈민들이 고리대금업에 시달린다. 경제적으로 자립도가 낮은 사람들이다. 스스로는 경제적 자립을 이루기도 어렵고. 자립을 돕는 금융기관을 만들어보자는 취지였다.”

신협을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 주민들을 설득해야했다. 주민들에게 “서로 믿고 나누는 공동체 속에서 경제적 자립 금융의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제안을 시작했다. 교육도 하고, 현장도 보여주고. 스스로 필요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주민기획단 4개 분과에서 신협을 만들자고 기획을 했다. 논의하면서 출자금 3억을 목표로 정하고, 출자 위원도 선정했다. 3년이 더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가난한 사람들의 믿음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 논골신협 유영우 이사장
“솔직히 3억 만들기가 어렵죠. 만약 3년 만에 조건을 못 갖췄으면 저희도 인가 못받았을 거에요. 1997년 11월 18일 우리가 인가받고 일주일 후 IMF가 발표됐어요. 신협들이 문제가 드러나 600개 정도가 통폐합, 정리됐으니까요.” 이후 직장신협 두 곳만 추가로 인가를 받았다. 가장 궁금한 것은 다른 금융기관보다는 다른 ‘신용’ 지역평판의 평가 기준이다.

“이사회에서 융통성있게 규정을 적용하려고 노력한다. 주민공동체나 사회적경제 조직에는 금리나 대출 조건을 좀 다르게 적용하기도 하고.” 기본 취지에 공감하는 수준에서 융통성이 발휘된다는 설명이다.

유영우 이사장은 신협의 위기 극복도 ‘협동조합’이라는 정체성과 지역가치에서 출발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지금 현재 금융당국에서 보는 시각은 협동조합 다 빠지고 금융기관으로만 본다. 제1금융권과 경쟁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결국 지역사회와 함께 튼튼히 기초위에 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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